미국 달러 돈뭉치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천장 없이 치솟는 달러에 신흥국 뿐만 아니라 유로화·엔화 등 주요국 통화 가치까지 급락하고 있다. 올들어 150개 통화 중 3분의 2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인 것으로 통계를 통해 확인됐다. 세계 전역이 강(强)달러발 환율 비상사태에 직면한 것은 이례적이다.
글로벌 경제 전반에 심각할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온 가운데 2026년께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현재의 강달러 현상은 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후퇴한 탓이 가장 크다. 고금리 지속으로 미국이 전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블룸버그가 추적한 환율 변화 통계를 인용해 150개 통화 중 3분의 2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였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화 가치가 많이 떨어진 국가를 살펴보면 일본 엔화가 올해 이후 4월 29일 현재 달러 대비 10% 떨어지며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어 아르헨티나 7.7%, 한국 6.5%, 브라질 5%, 호주 3.9%, 캐나다 3.4%, 유로존 3.0%, 중국 2.1%, 남아프리카공화국 1.9%, 영국 1.6%, 멕시코 0.6% 순으로 통화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의 경우 29일 장중 달러당 160엔을 돌파하며 가치가 34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제시 로저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세계의 중앙은행이라는 것이 지금보다 명백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며 연준의 금리정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큰 지를 설명했다.
미국 달러는 전세계 외환 거래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같은 물건임에도 더 많은 자국 통화를 주고 사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인플레이션 위기에 몰리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달러 차입이 많은 신흥국은 이자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 외환위기 경고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도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미국의 수출이 줄면서 무역 적자가 커지기 때문이다.
6월께 미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것은 미국의 경제가 예상보다 견고한 성적을 보이면서다. 하지만 미국 경제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강달러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골드만 삭스의 카막샤 트리베디 분석가는 “미국의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지 않아 고금리가 유지된다면 그 영향은 더 ‘악랄’할 수 있다”며 “정책 책임자들은 금리를 인하해서 자국 경제를 지탱하는 것과 고금리를 유지해 자국 통화를 지탱하는 것을 두고 치열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달러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국제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를 이끄는 아담 포센 소장은 30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개최한 ‘요동치는 세계경제, 긴급진단’ 세미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플라자 합의는 지난 1985년 미국이 재정·무역 적자 해소의 원인인 달러 강세를 완화하기 위해 일본 엔화 및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 조치를 말한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측 참모 3명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달러화 가치를 절하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포센 소장은 이 같은 보도에 힘을 실으며 “미국의 중립 금리(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 수준)는 오르고 물가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없거나 한 차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