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주요 전술 핵무기 투발 수단으로 꼽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로이터]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집권 5기를 시작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핵무기 훈련을 지시하며 서방에 재차 핵공격 위협을 가했다. 프랑스 등 서방국가가 궁지에 몰린 우크라이나를 직접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재래식 전력에 전술핵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혀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핵 훈련이 실제 핵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6일(현지시간) 남부군관구의 미사일부대가 공군·해군과 공동으로 ‘가까운 장래’에 전술핵무기 사용을 연습하기 위해 훈련 준비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도발적인 발언과 위협에 대응해 러시아 영토를 지키고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번 훈련을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훈련에는 전술 핵무기의 전투 임무 수행 준비와 실제 사용을 연습하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다만 훈련 장소와 시기는 발표되지 않았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훈련이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 장관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대한 프랑스군의 파병 가능성을 언급했고 캐머런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무기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이용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페스코프 대변인은 “전례 없는 새로운 긴장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수사”라고 비판했다.
러 외무부는 별도 성명을 통해 미국의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 제공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F-16 전투기 지원을 비판하며 “이를 미국과 나토의 의도적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미 국방부는 러 정부의 핵 훈련 발표에 대해 “이전에 러시아에서 보아온 무책임한 수사의 한 사례”라며 “현재의 안보 상황에 비춰볼 때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전술 핵무기에 대한 러시아의 독특한 입장을 고려할 때 우려할 만 하다”고 평가했다.
전술핵 무기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이용해 서로의 본토에 발사할 수 있는 전략 핵무기보다 덜 강력한 탄두를 짧은 거리에서 투발하는 핵무기를 말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9년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형 탄도·순하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한 중거리핵전력 조약(INF)을 잇달아 탈퇴하는 등 전술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2000년 이래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밝혀 온 군사 독트린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재래식 공격에 대응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서방 국가가 개입해 러시아 군이 패배 위기에 몰릴 경우 이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전술 핵무기로 반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과학자연맹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러시아는 44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이중 1525개는 전술핵탄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핵 금기:1945년 이래 미국과 핵무기 불사용’의 저자 니나 타넨왈드는 0.3킬로톤(kt) 규모의 소형 핵무기도 재래식 무기를 훨씬 능가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작은 핵탄두가 적절한 고도에서 폭발할 경우 장기적인 방사능 피해를 남기지 않고 전장의 적군을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아니더라도 서방은 핵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5개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 핵폭탄 B-61. [미 공군 제공] |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고도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방법은 없다”며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실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 역시 유럽 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해 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 등 유럽 5개국에는 약 150개의 B-61 전술핵폭탄이 배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