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주형기는 “유머를 섞은 클래식을 통해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던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
엄숙하기만 하던 클래식 연주회가 ‘유머’를 입었다. 모차르트 교향곡 사이로 영화 ‘제임스 본드’가 끼어들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다 ‘올 바이 마이셀프’를 부른다. 난데없이 피아노 밑에 들어갔다 머리를 쿵 찧으면 객석엔 웃음이 전염된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과장된 그의 미소는 무언극 속의 광대를 떠올리게 한다.
피아니스트 주형기(51)가 6년 만에 내한공연을 펼쳤다. 지난 4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초청된 그는 ‘가족음악회: 유머레스크’를 통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음악과 코미디를 접목한 기획자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베토벤에 웃음을 더한 ‘쿵후 엘리제’, 베토벤과 에릭 사티를 뒤섞은 ‘엘리제를 위한 명상곡’ 등 다양한 곡을 들려줬다.
공연을 앞두고 서울 인사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주형기(51)는 “음악과 유머는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며 웃었다.
주형기는 클래식 음악계의 ‘기인’이다. 이미 20년 전이었던 2004년, 파격적이고 신선한 무대를 클래식 공연장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영국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서 만난 이구데스만과 함께 듀오로 선보인 ‘악몽같은 음악’이라는 콘서트였다.
“클래식 공연장의 관객들은 너무나 폐쇄적이고 위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례식에 와있는 것 같았죠. 관객들의 모습을 보니 전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장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주형기와 그의 절친이 만든 클래식 코미디 듀오 ‘이구데스만 & 주(Igudesman & Joo)’의 공연은 기발하고 재치있는 아이디어로 무장했다. 거꾸로 매달려 피아노를 연주하고, 신용카드를 넣어야만 음악을 연주하는 콩트를 연출했다. 텅 빈 무대를 꽉 채우는 주형기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행동에 딱딱한 분위기에 갇혔던 관객들의 마음은 금세 무장해제됐다.
여덟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의 80세 생일 공연을 함께 할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스스로는 “오페라 한 편씩 써내는 천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코미디와 음악을 접목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음악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주형기는 “우리는 단지 음악을 가지고 코미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음악인으로의 음악성을 인정받아 초창기 많은 음악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액스가 주형기와 함께 공연하며 클래식의 엄숙주의를 깨왔고, 팝가수 빌리 조엘은 주형기와 협업하며 음반을 냈다.
“클래식 음악은 공룡 같은 존재예요. 공룡은 덩치는 크고, 한 번 움직이려면 많은 힘이 들고, 그러다 결국 멸종한 존재가 됐죠. 음악과 코미디를 접목한 20년 전엔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클래식계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유머를 섞은 클래식을 통해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던 젊은 세대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