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했는데 결국…보이스피싱 ‘김미영 팀장’ 필리핀서 탈옥

[경찰청·연합]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김미영 팀장’으로 이름을 알렸던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박모(54)씨가 필리핀 교도소를 탈옥했다. 첩보를 입수한 우리 정부가 필리핀 측에 경고했지만 박 씨의 탈옥을 막진 못했다.

12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경찰청은 필리핀 경찰 및 법무부 이민국과 협력해 박씨를 집중 추적 중이다.

박씨는 검거 이전부터 발령됐던 적색수배가 아직 유지되고 있다. 경찰은 박씨의 본거지와 생활 반경을 고려할 때 아직 필리핀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밀항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국내 보이스피싱 범죄의 창시자 격으로 여겨진다. 지난 2012년부터 김미영 팀장 명의 문자메시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뒤 자동응답전화(ARS)를 통해 대출 상담을 하는 척하며 피해자 개인정보를 빼내는 방식으로 수백억원을 가로챘다.

다른 조직원들이 2013년 대거 검거·구속된 뒤에도 박씨는 도피 생활을 이어왔다. 필리핀에서는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돼 현지에서 재판받기 위해 지난해 11월 이감돼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 수감돼 왔다. 하지만 이달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측근인 신모(41)씨와 함께 탈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교정당국은 2일 인원 점검 때에야 박씨 일당이 사라진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도주 및 범행 수법은 필리핀 당국이 조사 중이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되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작년 12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교도소 측에 탈옥 가능성을 경고하며 철저한 관리·감독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러 박씨가 필리핀에서 죄를 짓고 형을 선고받아 국내 송환을 피하려는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이 방식은 과거 유명 작가로 행세하며 수천만원의 사기를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윤모씨가 고안해 현지 도피사범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이 국가소추 외에 사인소추가 가능해 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직접 기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필리핀 현지에서 죄를 짓고 형을 선고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려 추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박씨의 탈옥은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로 필리핀 수사당국이 한국행을 결정하지 않고 자국 법정에 세워 징역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국내 송환도 어려울 수 있다.

경찰청은 필리핀 법무부 이민국까지 나선 것은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며, 신속한 검거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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