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불안한 물가에 상반기 인하 물건너 갔다”…韓, 금리인하 4분기에나 가능할 듯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축산물코너에 다양한 부위의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금리 인하가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다. 물가 안정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성장률까지 예상치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 ‘저물가·저성장’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무엇보다 역대 최대의 한미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다수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리 인하가 빨라야 4분기에나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억제됐다고 판단한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달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 중국도 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을 도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당장 물가가 잡히고 있지 않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2.9%)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뛰는 등 2%대 안착을 확신하기 이르다.

국제유가 불확실성도 간과할 수 없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118.82)보다 0.3% 높은 119.12(2020년=100)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로 지난해 12월 이후 다섯 달째 오름세다. 먹거리 물가는 일부 안정됐으나, 유가 상승 등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공산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나들이 수요가 몰리면서 음식점및숙박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서비스 물가도 뛰었다.

시장의 예상을 웃돈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3%)도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엔 악재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졌다. 게다가 1분기 성장률은 수출과 내수가 모두 좋았다.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0.7%포인트, 순수출은 0.6%포인트에 달했다.

무엇보다 아직 미국이 금리 인하에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2.0%포인트나 낮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환율의 급격한 상승 우려나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등을 감내하고 금리를 내리긴 매우 어렵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준의 결정에 전적으로 달린 것”이라며 “미국이 9월에 내리면 우리나라는 10월에 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이 7월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면 우리도 빠르게 기준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연준은 2% 물가를 확신해야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고, 이에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라 그룹의 글로벌 경제분석 책임자인 로버트 슈바라만 박사도 한은이 4분기에나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봤다.

슈바라만 박사는 전날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글로벌 불확실성 증대 속 아시아 경제 및 금융시장 긴급 진단’이란 웨비나에서 “10월 정도 되면 한은이 충분한 데이터를 보고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보다 앞서 정책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지만, 너무 빨리 디커플링에 나서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선 “최근 미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고, 디스인플레이션도 나타나고 있다”며 “연준이 연내 7월과 12월 두 번에 걸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한국이 4분기에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지난달 우리나라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8월에서 10월로 조정했다. JP모건 역시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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