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개전 3년째로 접어들며 러시아의 거센 공세에 우크라이나가 수세로 몰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 뿐 아니라 미국도 ‘서방 지원 무기로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장 상황에 따라 미국의 입장은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그간의 입장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영토 공격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항상 경청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고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본토 타격 금지 조건을 없앤 것은 아니지만, 미국도 정책 변화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WSJ는 바이든 행정부가 정책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백악관의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의 발언에 이어 “우리는 미국 무기를 사용해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조장하거나 허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방은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지난 2월부터 지원을 승인한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에이테큼스(ATACMS)는 사거리가 300km에 달해 러시아 서부가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만, 확전을 우려한 서방은 본토 타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계속 수세에 몰리면서 최근 유럽에서 이 제약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8일 독일을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가 공격받는 곳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군사기지를 무력화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우리가 우크라인들에게 미사일이 날아오는 지점을 타격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면 이들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우크라이나가 국제법, 무기를 공급하는 국가의 조건을 존중하는 한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며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이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는 게 허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영국도 자국 지원 무기의 사용 제한을 해제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영국제 스톰 섀도우 순항미사일로 러시아 여러 지역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3일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반격할 절대적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지난 24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사용에 대한 일부 제한을 해제해야 할지 숙고할 때”라며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게끔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27일에는 불가리아에서 열린 나토 의회연맹 춘계총회에서 러사아에 대한 서방 무기 발사 제한을 해제할 것을 회원국들에 촉구하는 선언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서방의 이런 움직임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우즈베키스탄 순방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유럽, 특히 작은 국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알아야 한다”며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은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을 공격하기 전에 이를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