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이 17일 밝힌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 오류의 핵심은 주식가치 산정을 잘못해 노 관장의 내조 기여도가 극도로 과다하게 계산됐다는 점이다.
SK의 성장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를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보다 훨씬 크다고 전제해 최 회장이 1994년 선친으로부터 승계상속 받은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를 평가 절하한 점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한텔레콤(현 SK C&C)은 현재 SK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최 회장 측 법률 대리인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날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격이 두 차례 액면분할을 거치며 최초 명목 가액의 50분의 1로 줄었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고려하지 않아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의 대한텔레콤 주식 가격을 1000원에서 100원으로 평가 절하했고, 그에 따라 재산분할 대상인 부부공동재산이 과도하게 많게 책정됐다고 주장했다.
재산 분할 판단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숫자에 결함이 있는 만큼 ‘산식 오류→잘못된 기여 가치 산정→자수성가형 사업가 단정→SK㈜ 주식을 부부공동재산으로 판단→재산분할 비율 확정’으로 이어지는 논리 흐름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측 주장이다.
이 변호사 설명에 따르면 최종현 선대회장은 최 회장에게 대한텔레콤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1994년 약 2억8000만원을 증여했다. 최 회장은 이 돈으로 같은 해 11월 당시 누적적자 수십억원 이상인 대한텔레콤 주식 70만주를 주당 400원에 매수했다. 대한텔레콤의 주식은 2007년 3월 1대 20의 비율로, 2009년 4월 1대 2.5의 비율로 각각 액면분할됐고 이에 따라 주식 가격도 최초 대비 1대 50 비율로 가액 축소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당 가치 산정에서 두 차례의 액면분할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이 변호사는 주장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1994년 11월 최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이에 1994년부터 1998년 선대회장 별세까지, 이후부터 2009년 SK C&C 상장까지의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면서 회사 성장에 대한 선대회장의 기여 부분을 12.5배로,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은 1998년 5월 당시 대한텔레콤 주식 가액을 추후 액면분할 결정을 결과를 반영해 주당 100원이 아닌 1000원을 계산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의 계산 오류를 바로잡는다면 당초 재판부가 12.5배로 계산한 선대회장의 기여분이 125배로 10배 늘고, 355배로 계산한 최 회장의 기여분이 35.5배로 10분의 1배 줄어든다. 사실상 100배의 왜곡이 발생한 셈이다.
최 회장 측은 그동안 ‘6공 비자금 300억원 유입’ 등을 인정한 재판부 판단에 이의를 제기 해왔으나 이번에는 그와는 별개로 재판부가 부부공동재산으로 판단한 SK㈜ 주식의 산정과 관련해서도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1심과 2심에서 엇갈린 특유재산에 대한 해석을 대법원에서는 집중적으로 파고들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최 회장 측은 6공 유무형 기여 논란 등에 대한 법리적 판단도 함께 바로잡겠다는 방침이다.
이 변호사는 “그 외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6공의 기여 존재 여부 등 중요한 이슈에 대해 그 판단 내용을 외부에 직접 공개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은 실명의 가사 판결문이 무차별적으로 온라인에 유출돼 게시되면서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 기정사실화되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부득이 최 회장 측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었다”고 이날 긴급 설명회를 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SK그룹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지 열여드레 만인 이날 항소심 관련 설명회를 연 것은 노 관장의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과 SK그룹 간 정경유착을 사실상 인정한 판결에 따른 그룹 이미지 훼손과 막대한 재산분할 결정에 따른 경영권 약화 우려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역대 국내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결정에 SK그룹은 물론 경제계 전반이 술렁였다. 오너 개인의 사생활을 넘어 그룹 전반을 뒤흔들 만한 위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 회장이 재산분할 재원 마련을 위해 주식담보대출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는 커졌고 이는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주가 급등과 주요 계열사 지분 매각설 확산 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은 이날 직접 설명회에 참석해 “그간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고 이것(이혼소송 판결)은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적대적 M&A나 이런 위기로 발전되지 않게 예방해야 되는 문제도 있겠지만, 설사 그런 일 생기더라도 충분히 막을 역량이 있다”고 밝혔다.
SK그룹 관계자는 “SK와 구성원의 명예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곡해된 사실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일을 다할 예정”이라며 “물론 부단한 기술개발과 글로벌 시장 개척 등 기업 본연의 경영활동을 통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더욱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