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러시아산 가스 수입 美 추월…제재에도 의존도 높아

지난 2022년 5월 리투아니아 빌뉴스 인근 자우니우나이 가스 압축기 시설의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AP]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량이 지난달 미국을 추월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원자재시장 분석기업 ICIS의 자료를 인용해 영국과 스위스,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등 유럽 국가에 대한 지난달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송량이 유럽 전체 공급량의 15%를 차지해 미국의 14%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미국의 LNG 유럽 수출량은 2022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ICIS의 가스 분석 책임자인 톰 마르젝-만저는 “유럽에서 러시아산 LNG 점유율을 줄이려는 노력에도 오히려 점유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유럽 수출이 대폭 감소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탈러시아’를 선언하고 수입량을 급격히 줄이기 시작했다. 대신 미국산 LNG 수입을 늘렸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북서유럽과 연결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폐쇄했다. 이에 EU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140억㎥의 천연가스를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통해 수입했고, 다른 180억㎥의 가스는 LNG 형태로 도입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가스 수입이 증가한 것은 EU가 러시아에 대한 자원 의존을 낮추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터 분석 회사 케이플러에 따르면 러시아는 EU에서 두 번째로 큰 LNG 공급국이다. 지난해 러시아산 LNG 수입은 EU 전체 LNG 공급의 16%를 차지했으며, 이는 2021년 러시아가 EU에 판매한 물량에 비해 40% 증가한 수치다. 2023년 수입량은 2022년보다 소폭 감소했으나, 올해 1분기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유럽 LNG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은 지난해 러시아산 LNG 수입규모가 유럽 전체의 87%를 차지해 최대 수입국이다.

키이우 경제대학의 벤저민 힐겐스톡은 “몇몇 국가들이 값싼 러시아산 LNG로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구매가 이어져온 것”이라며 “그래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금수(禁輸) 조치가 있지 않는 한 러시아 LNG 수입을 완전 막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산 LNG 공급량이 미국 LNG를 추월한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르젝-만저는 “러시아가 여름에 북해 항로를 통해 아시아로 LNG를 운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전은 지속될 가능성이 낮다”며 “미국의 LNG 생산량이 다시 증가하는 반면, 유럽으로 보내는 러시아산 LNG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은 러시아산 LNG를 대체할 공급망을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난 유럽으로 공급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가스관 서비스를 2025년부터는 더이상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해서 새로운 대체재를 찾는 게 급선무다.

EU 집행위원회는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천연가스 공급량을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EU로 유입되는 140억㎥의 러시아 천연가스량을 대체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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