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보다 엄격한 원유 인증체계, 힘들어도 자부심 느끼죠” [인터뷰]

김범태 해돋이목장 대표.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국내 원유 인증체계가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습니다. 목장주 스스로가 병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1등급은 받지 못해요. 편하게 소를 키울 수도 있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철저한 관리를 통해 건강하게 키웁니다.”

지난 14일 찾은 경기 포천시 해돋이목장. 4000㎡(약1500평) 규모의 축사에는 130마리의 소가 생활하고 있다. 소들은 생후 20일~40일 된 어린 송아지부터 60일이 넘은 중송아지, 10개월 된 큰 송아지, 임신한 소까지 성장 단계별로 분리돼 사육된다. 각 단계에 맞게 사료, 부드러운 풀, 거친 풀 등 급여하는 먹이도 다르다.

김범태(38) 해돋이목장 대표는 아버지의 목장을 이어받았다. 2022년 8월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목장으로 왔다. 2세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반이 됐다. 김 대표는 관련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며 소에 관해 공부하고, 사료 기업에서 목장 컨설팅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시간까지 합하면 20여 년을 젖소에 쏟았다.

김 대표는 가장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목장에 왔다. 그는 “당시 젖소 1마리당 평균 유량이 29㎏정도로, 목장이 제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평균 유량이 40㎏ 정도인데, 앞으로 목표는 평균 유량 45kg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4일 오후 경기 포천시 해돋이목장. 생후 20~40일 된 어린 송아지가 분리돼 사육 중이다. 전새날 기자

김 대표는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로 개체별 사양관리의 중요성을 꼽았다. 그는 “목장이 뻥 뚫려있는 이유는 소가 갇힐 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며 “특히 여름에는 더위에 취약한 소를 고려해 지붕 위에 차광막을 설치하고, 안개 분무를 설치하며 환경 개선에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상태도 꼼꼼히 확인한다. 체온, 활동 기록, 반추 횟수까지 젖소의 데이터를 모두 기록한다.

철저한 개체별 사양관리는 원활한 품질관리로 이어진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 세균질병과가 진행한 ‘2023년 원유 검사’ 결과, 지난해 집유된 원유의 체세포 수 1등급 비율은 69.13%로 전년 대비 4.25%p(포인트) 증가했다. 세균수 1등급 비율도 99.59%로 전년 대비 0.05%p 증가했다. 우유의 품질은 체세포 수와 세균 수로 결정된다. 스트레스나 질병이 없는 건강한 젖소는 체세포 수가 적다. 세균 수는 원유의 위생 수준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원유 인증 체계는 다른 국가보다 엄격하다. 좋은 등급을 받기도 어렵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국산 우유의 가장 높은 품질 등급은 1A다. 원유 1㎖당 체세포 수 20만 개 미만, 세균 수 3만 개 미만이면 1A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낙농 선진국인 덴마크와 같은 수준이다. 낙농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1㎖당 체세포 수 40만 개 이하, 세균 수 10만 개 이하)과 네덜란드(1㎖당 체세포 수 40만 개 이하, 세균 수 10만 개 이하)보다 엄격하다. 김 대표는 “(국내의 경우) 생산비가 많이 들어가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한 마리에 집중되는 사양 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김범태 해돋이목장 대표의 낙농 학습 기록이 담겨있는 노트. 전새날 기자

그러나 국내 낙농가의 주름살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23 낙농경영실태조사연구결과’에 따르면 낙농가는 부채 및 후계자 부족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농가 호당 평균 부채는 6억8100만원으로, 2022년보다 9500만원(33%p) 증가했다. 부채는 주로 시설투자(33.5%), 사료구입(24.9%), 쿼터매입(19.0%) 등에서 발생한다.

꾸준히 오르는 생산비도 부담이다. 지난달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 생산비는 1ℓ당 1003원으로 2022년(959원)보다 4.6% 증가했다. 지난해 우유 생산비가 늘어난 데는 사료비·자가노동비 상승이 영향을 끼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낙농용 배합사룟값은 2022년 1㎏당 641원에서 2023년 669원으로 4.4% 올랐다. 같은 기간 시간당 자가노동단가도 3.9% 상승했다. 앞서 2022년 우유 생산비는 전년(843원) 대비 13.7% 오르며 큰 폭으로 상승했다.

김 대표는 역시 “예전에는 유사비(우유 매출 대비 사료비 지출 비중)가 매출의 4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60%를 웃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당 150원 정도가 올라 생산비가 치솟았다”며 “60마리를 착유한다고 가정하면 사료와 풀은 최소 30t(톤)씩 들어가니 900만원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버는 돈은 똑같은데 생산비만 최소 월 1000만원 가량이 늘었다”면서 “고환율·고금리에 이자와 생활비를 지출하면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만약 누군가 목장을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땅도 있어야 하고, 축사도 지어야 하고, 소도 사야 한다”며 “무엇보다 가장 막대한 돈은 쿼터(우유를 짤 수 있는 권리)”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유업체 한 곳을 예로 들면 쿼터가 1ℓ당 60만원이 넘는데, 2t을 짠다고 하면 12억이 필요하다”며 “유사비가 6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각종 비용을 계산하면 빚더미에 앉는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했다.

14일 오후 경기 포천시 해돋이목장. 통풍이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 축사 사방이 트여있다. 전새날 기자

고령화도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지난해 경영주의 연령분포는 60대(44.0%)가 가장 많았고, 50대(21.2%)가 뒤를 이었다. 20∼40대 경영주 비율은 25.9%로 전년 대비 1.6%p 줄었다. 50~70대 경영주의 비율은 74%로 전년 대비 1.1%p 증가했다. 여가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낙농업 특성상 가업을 이어받으려는 2세도 빠르게 줄고 있다.

김 대표의 하루도 매일 새벽 4시에 시작된다. 4시 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착유를 한다. 이후 사료와 우유를 주고, 젖소들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번식이 필요한 젖소는 인공수정 과정을 거친다. 오후 2시에 사료 배합을 시작하고, 4시 30분부터 저녁 착유를 준비해 6시께 일을 마친다. 그는 “목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마음이 불편해 며칠씩 놀러도 못 간다”며 “어릴 때도 부모님과 여행을 갔던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목장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목장을 운영하는 것을 봤으니,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며 “더 욕심을 내 열정 있게 배우려는 2세도 많은데, 결국 이들이 우리나라 낙농을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우리가 생산하는 우유를 믿고 찾는 소비자가 있다면 사업 가능성은 항상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며 “깨끗하고 건강한 젖소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먹거리라는 자부심을 갖고 생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