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나친 솔직함인가, 새로운 인간형인가?
‘연프’(연애 프로그램)에서 남자(영호)를 만나 그가 좋아하는 국밥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배부른 것도 있는데, 약간 응가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가능한 상황일까? 그리고는 "나 화장실 갔다와도 돼"라고 말하고는 나갔다 왔다.
19일 방송된 '나는 솔로' 20기에 나온 정숙 얘기다. 물론 남녀도 오래 사귀면 서로 생리 현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지만, 며칠 전만 해도 모르는 남자와의 대화가 모든 국민이 볼 수도 있는 방송에 나갈 것을 알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지 싶다.
정숙은 자기 소개에서 '1일 1뽀뽀'를 99세까지 할 거라는 영호의 초기 자기소개를 가장 잘 이용해먹었다. 영호-정숙은 ‘뽀뽀 거사’를 마친 뒤, 팔짱을 낀 채 공용 거실에 등장했다.
이어 사람들이 보는데도 뽀뽀를 했다. 이를 본 현숙은 "나가서 뽀뽀해 여기서 하지마. 그러다 결혼 못해"라고 했건만, 이 말은 먹히지 않았다.
뽀뽀를 한 사람이 민망한 게 아니라 이를 본 사람이 민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과도하게 솔직하고 진짜 감정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망함은 다른 출연자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몫이기도 했다. MC 송해나는 "뭘 훔쳐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 정숙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영호가 정숙의 감정 브레이크를 밟아나갔다. "더 이상은 안돼" "감당할 자신 있어"라고 말하면서. 이런 모양새로 진도가 나가니 편집으로 날리기도 어렵다. 도파민과 재미, 자극의 시대에 제작진은 이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두 분은 이제 '부부'입니다"라고 말한 MC 데프콘의 말을 큰 자막으로 올릴 정도였다.
이에 앞서 정숙은 “그럼 지금 우리 뽀뽀할까?”라고 제안했을 때, 영호는 “지금 하면 큰일 나~”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정숙은 “뒷감당을 왜 해야 하냐?”라며 영호를 설득했다. 뽀뽀 직후, 정숙은 “ 넌 이미 내 남자야”라고 선언했다. 정숙은 신인류일까? 현대판 팜므 파탈일까?
정숙은 데이트 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5일 동안 같이 살다시피 하지 않았나? 사회에서 한 달 간 ‘썸’ 탄 거랑 밀도가 같다”고 자신의 스킨쉽 진도가 빠르지 않다고 자신만의 논리로 강조했다. 영호 역시 “저에게 죄가 있다면 돌을 던지시라”고 당당히 말했다.
정숙은 남자를 밝히는 여자가 아니다. 과도하게 솔직했을 뿐이다. 나름 개념녀다. 정숙은 영호와 ‘뽀뽀’로 서로의 마음에 도장을 찍은 후 ‘결혼’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정숙은 “진짜 결혼하고 싶었으면 ‘솔로나라’에 안 나왔을 수도 있어. 성격 이상한 애로 낙인찍히면 결혼 못 할 수도 있잖아”라고 말했다.(정신 멀쩡하죠) 영호는 “그럼 나랑 하면 되겠네, 결혼”이라고 ‘심쿵 멘트’를 날렸다.
이에 정숙은 영호의 경제적 여건을 물어봤고, 영호는 “올해 마이너스의 삶에서 탈출한다”라고 솔직히 답했다. 정숙은 “같이 있는 게 좋은 거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진 않다. 나는 같은 길을 갈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영호를 미소짓게 했다. 정숙은 돈 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했다.
영호는 최종 프러포즈에서 정숙을 불러냈다. 이후 ‘자기소개 타임’을 했던 단상에 올라가 “너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고 밝힌 뒤, 김동률의 ‘내 사람’을 불러줬다. 그러면서 “2절은 네가 나랑 결혼한다고 하면 들려줄게”라고 해 정숙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정숙은 “남편 될 사람이 축가를 불러주는 게 꿈이었는데”라고 감동을 표현한 뒤 영호와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뒤이어 정숙도 ‘국밥 마니아’인 영호를 위해 아침 식사로 국밥을 따끈하게 차려주는 이벤트를 해줬다. 이에 울컥한 영호는 “요리는 잘 못했다. 그럼에도 절 위해 준비해주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고, 신혼부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나랑 국밥 자주 먹을래?”라며 프러포즈했고, 정숙은 “영호야, 우리 오늘부터 ‘1 일 1뽀뽀’ 하자”라며 웃었다. 커플 탄생후에도 정숙은 “저희 오늘부터 1일이다. 저 여기서 차 팔고 가려고요”라고 말해 시원함을 더했다.
정숙에 대해서는 MBTI 등 궁금한 게 많은 데, 제작진이 뽀뽀남의 정체에 흥분한 나머지 디테일을 놓친 부분이 있다.
영호를 선점한 것은 초등학교 교사인 순자였다. 초반만 해도 영호와 순자는 잘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정숙이 영호를 중간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여 가로채기에 성공하며 커플 기회를 잡았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다는 말도 있지만 순자에게는 "포기하길 잘 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커플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소아과 의사인 영수의 최종선택때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영수는 “자기소개때 출연이유중 하나를 경험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경험이라고 하면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걸 경험이라고 하지만, 진짜 경험은 그런 소비의 역사라기 보다는 극복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제 나름대로는 그런 극복의 역사를 써보는 시도를 해왔던 것 같다”면서 “과거의 저라면 제 선택 이후에 선택을 못받는 게 민망하고 대중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선택을 포기했겠지만,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저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제가 극복의 역사로 일군 제 방식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분께 직접 제 이름을 말씀드리는 데 의의를 두고 저는 최종선택을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현숙에게 당당하게 다가갔다. 메모해도 될만한 문장이다. 그래서 제작진도 커플 성사 실패의 멘트인데도 하나도 편집하지 않고 내보낸 것 같다. 영수의 커플 형성 실패는 또 하나의 성장 사례다.
한편, 이날 진행된 ‘20기의 최종 선택’에서는 영호-정숙 커플 외에도 영철-영숙, 상철-영자, 영식-현숙 등 무려 네 커플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