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ESF 전기로에서 직접 제품을 출선하고 있는 모습. [포스코 제공] |
[헤럴드경제(포항)=김성우 기자] “여기가 수소환원제철 관련 시험설비를 계획중인 장소입니다. 시험설비에만 수천억원대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어요.”
지난 24일 찾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외부 현장. 윤영식 포스코 하이렉스(HyREX)추진단 부장이 손짓으로 포크레인 터닦기 작업이 한창인 부지를 지목했다. 이곳에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위한 시험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포스코는 자체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를 빠른 시일내에 상용화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위 부지는 이러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한 발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윤 부장은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위해 현장의 모든 직원들이 부지런히 뛰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의 화석연료 대신 수소(H₂)를 환원제로 쓰면서, 그에 따른 부산물로 고체철과 함께 물(H₂O)을 생성하는 친환경 철강 기술을 말한다. 철(Fe)은 본래 자연상태인 철광석 상태에서는 산소(O)와 붙은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여기서 산소를 떼어내야만 강직도가 높은 철로 활용이 가능하다.
기존에 쓰던 목탄과 석탄 등 환원제가 뜨거운 열과 탄소(C)를 함께 공급하면서 철을 얻는 대신 일산화탄소(CO)와 이산화탄소(CO₂)를 발생시켰지만, 수소환원제철은 환원제로 수소를 쓰기 때문에 부산물로 물을 내놔 탄소 배출량이 적다.
앞선 인류의 철 발견이 ‘문명의 시작’을 가져왔다면, 철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신기술은 향후 ‘그린경제’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으로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가 이러한 대변화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다만 아직은 이 기술이 상용화가 되지는 않고 있다. 완전한 수소환원제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소만을 환원제로 쓰는 ‘환원로’를 상용화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한 철강업체는 현재 전 지구적으로도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포스코는 자체 개발한 환원로인 ‘파이넥스 기술’을 통해 수소환원제철을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파이넥스는 철 생산에 들어가는 환원제의 25%를 수소로 구성하는 포스코의 자체 친환경 기술이며, 향후 환원제를 100% 수소로 전환하는 게 목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파이낵스 3공장 전경 [포스코 제공] |
이날 기자가 직접 찾은 곳은 포항제철소 내에 위치한 ▷하이렉스 시험설비 부지와 ▷파이넥스 3공장 ▷포스코가 개발중인 전기용융로(ESF) 시험설비 등이다.
윤 부장이 처음 소개했던 시험설비 부지는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한 시금석이 될 예정이다. 부지는 철도가 지나가는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주위 공장들도 많아서 유틸리티 배관의 연결이 용이해 보였다. 포스코 기술연구원이 인근에 위치하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하기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포스코는 현장에 하이렉스를 소개할 전시관과 함께 하이렉스사업을 준비할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도 따로 개관할 만큼 이번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광양제철소에는 하이렉스 생산을 위한 부지를 이미 확보했고, 포항제철소 인근에 추가적인 용지 확보를 위해 지역사회와도 협의를 진행중이다.
배진찬 포스코 하이렉스추진반장(상무)은 “하이렉스는 포스코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구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상징과도 같다”면서 “새로운 시대의 ‘퍼스트 무버’로서 도약하기 위한 포스코의 의지를 표현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두번째로 찾은 파이넥스 3공장은 현재 파이넥스 기술을 통해 연산 200만t 규모로 쇳물을 생산하는 시설인 동시에, 향후 수소환원제철 환원로를 구현할 바탕이 되는 장소로 꼽힌다.
일반적인 고로가 크게 하나의 원통형으로 구성되는 것과 다르게 파이넥스는 네 개로 나눠진 유동환원로와 여기 달린 용융로로 구성된다. 유동환원로에서는 일산화탄소(CO)와 수소(H₂)를 환원제로 넣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고, 여기서 생성된 직접환원철(DRI)은 용융로에서 녹아진 쇳물 형태가 된다.
일반적인 고로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작업과 이를 녹이는 용융작업이 한 번에 이뤄지는데, 파이넥스는 이를 나눠서 진행하는 셈이다. 언뜻 보기엔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용을 줄이고 공해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데 더 획기적이라는 평가다.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창형 포항제철소 기술개발섹션 리더는 “작업에 투입되는 인원이 예전에는 더욱 많았지만, 현재는 안정화되면서 일반적인 고로 조업 수준으로 떨어졌다”면서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고로보다 작업 공정이 덜 번거롭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파이낵스 3공장 전경 [포스코 제공] |
실제 현장에서는 환원작업을 거친 쇳물이 용융로를 거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는 탄소에너지를 통해 달궈지는 용융로는 통상 1500도 수준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향후 구현될 하이렉스 기술은 파이넥스의 용융로가 했던 역할을 전기로가 대체해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ESF 파일럿 시설은 최적의 수소환원제철 체계를 갖추면서도, 생산에 드는 비용을 대폭 줄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전기로에 슬래그의 성분제어가 가능하도록 추가적인 설계를 더했다. 이를 통해 철 함량 비중이 적은 저품위 분철광석도 제품생산에 쓸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날 외부에 처음 공개된 포스코의 전기용융로 시험설비(Pilot ESF)는 시간당 최대 1t의 용선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지난해 7월 제작하여 올해 1월 완공됐고, 지난 4월에는 안정적인 조업과 테스트를 통해 15t 분량의 용선을 출선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직은 파일럿 설비인 만큼 향후 다양한 품위의 원료와 시험 조업을 이뤄나갈 예정”이라면서 “원료 장입 분포를 최적화하고 용선 품질 확보 등 전기용융로 요소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천시열 포항제철소 소장도 “앞선 3000년 철기시대의 역사는 광석의 산소를 탄소를 활용해 떼어내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 전세계 시장은 수소를 통해 떼어내는 것이 될 것”이라면서 “포스코의 하이렉스 기술이 성공만 한다면 전세계 철강을 리딩할 수 있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소 ESF 파일럿 시설의 모습 [포스코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