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간첩단 사건’ 휘말려 징역 7년…재심 통해 무죄 확정

대법원. [연합]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이른바 ‘유럽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징역 7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5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반인류적인 고문과 협박으로 인해 자백했었던 점이 인정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김상환)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받은 A씨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1966년 유럽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았다. 영국 유학 중 사회주의를 공부하거나,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지령서신을 전달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유럽간첩단 사건이란 1960년대 대표적인 공안조작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영국 캠브리지대 박노수 교수와 민주공화당 김규남 국회의원 등을 불법 구금해 강압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들을 기소했고, 법원은 자백 외 증거가 없음에도 사형을 선고했다.

박 교수와 김 의원의 사형은 1970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형은 2년 뒤인 1972년에 집행됐다. 이후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들이 가혹행위로 허위자백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족은 2009년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2015년 사형이 집행된 지 43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다.

A씨는 2022년 1월에 재심을 청구했다. A씨도 과거사위·재심 재판 과정에서 “불법체포, 감금,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간첩 활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8형사부(부장 김재호)는 지난 2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A씨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체포·구금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이어 “A씨가 고문 등 가혹행위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검사가 이를 해소할 증명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자백은 임의성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재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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