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과정에서 드러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상속세와 관련한 ‘세무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 등의 역외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국세청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가 나왔다. ‘김옥숙 메모’로 촉발된 6공 비자금 논란이 국회에서 ‘세무조사 필요성’과 ‘역외자금 의혹’ 등으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재판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상속세 탈루 혐의가 나왔기 때문에 세무조사에 착수할 근거가 생긴 것”이라며 “(SK 측으로 간 비자금이)차명재산이었는지 나중에 돌려받을 유효한 채권인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국회 기회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전날 국세청 업무보고에서도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거나 유효한 채권이라면 2021년 사망한 노 전 대통령의 상속재산에 포함돼야 한다”며 “이것을 빨리 조사해서 유효한 채권인지 차명재산인지 증여인지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 등이 알려졌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 메모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강민수 국세청장은 “재판에서 나온 것이든, 소스가 어디든 과세해야 할 내용이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의원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되묻자, 강 청장은 “여러 가지 법령 검토, 특히 시효 검토를 해보고 과세할 건이면 당연히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임 의원은 “세무조사가 가능한 건으로 판단되므로 조사에 착수해 환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논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의 역외 탈세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박성훈 기재위원은 국세청 업무보고에 “국세청에서 전재국, 노재헌의 역외탈세에 대한 과세를 지금까지 총 얼마나 했는지 아는가”라고 물었고, 강 청장은 “특정인의 총 과세금액이나 역외탈세가 어느 정도 되는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강 청장은 “역외탈세와 관련해 탈루 혐의가 있으면 그게 누구든 반드시 한번은 검증을 거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6공 비자금이 가족에게 승계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법을 통해 징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소영 관장 측의 주장대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최종현 SK 선대회장에 300억원을 증여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차명재산이거나 유효한 채권으로 판명될 경우 상속재산에 해당돼 과세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1998년 상속받은 SK그룹의 가산(家産) 1650억원이 대법원 상고심의 추가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항소심 재판부는 6공 비자금 300억원과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지원이 SK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판단했으나, SK에서는 최 회장이 친족 합의에 의해 물려받은 1650억원이야말로 그룹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보고 있다. 향후 대법원에서는 ▷6공 비자금 300억원의 SK 유입설 실체 ▷현재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출발점인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 2억8000만원이 선친에게 증여받은 ‘특유재산’인지 여부 등과 함께 ▷해당 가산의 기여도 산정 반영 여부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텔레콤 인수자금 2억8000만원은 1심에서부터 논란이 됐지만, 6공 비자금 300억원은 2심에서 새롭게 나온 주장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더욱 정밀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승환·정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