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티메프 사태 관련 피해를 찜카가 안고 가겠다고 제휴사 업체들에게 보낸 공문 [해당 업체 제공] |
“이제 버틸 수가 없습니다. 파산 밖에 방도가 없네요.”
6년 넘게 가전제품 유통사를 운영한 A씨는 법인 파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티몬에서 받지 못할 정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다. A씨 회사가 8월과 9월 티몬에서 받아야 할 정산금은 18억원에 달한다. A씨는 “8월 돈을 못 받으면 파산인데, 티몬은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라며 “이제 끝을 준비하고 있다”고 힘없이 말했다.
A씨가 티몬에 입점한 건 2021년이었다. 초기에는 티몬 거래 비중이 크지 않았다. G마켓, 옥션, 11번가를 위주로 판매했다. 2022년부터 티몬이 파격적인 가격의 판촉(판매촉진) 행사를 키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같은 해 티몬은 싱가포르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큐텐에 인수됐다. 할인행사 판매가가 물건을 들여온 가격보다 낮은 경우가 잦아졌다.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이 몰렸다. 그러면서 티몬 거래 비중이 높아졌다. 파산 결정 직전, 회사의 티몬 거래액 비중은 90%에 육박했다. A씨는 회사 직원 5명에게 곧 퇴사를 통보할 계획이다. A씨는 “직원에게 아직 공지를 못했는데 사재를 털어서라도 퇴직금은 챙겨주려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정산 지연으로 중소 판매자(셀러)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단가가 수백만원에 이르는 여행과 가전 품목의 판매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 금액은 1700억원 수준이다. 정산 지연 사태로 초기 미정산금 추정액보다 700억원 가량 늘었다. 위메프는 400억원, 티몬은 1200~13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티몬과 위메프에 입점한 판매자는 6만곳에 달한다. 상당수가 중소 판매자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판매대금을 제때 정산받지 못하면 사업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정산 주기는 최대 두달이다. 이번에 미지급된 정산 금액은 5월에 판매한 상품에 대한 것이다.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대금이 물려있다. 지난달과 이번달까지 판매한 상품 정산분을 더하면 자금난은 더 악화일로다. 전체 미정산 피해 금액이 조 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산금 자금 조달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정산 지연에 대한 자금조달계획을 최대한 빨리 제출하라고 위메프와 티몬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는 현재 여행상품과 관련한 환불 계획만 제출된 상태다. 소비자에 대한 환불 조치는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당국의 재촉에도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티몬과 위메프, 모기업인 큐텐 모두 재무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의 특성상 담보로 맡길 수 있는 고정자산이 없다”며 “호소할 방안은 티몬과 위메프의 사업성 정도인데 지금 상황에서 투자하겠다는 은행이나 기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은 사옥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지만, 위메프와 티몬은 모두 사옥을 임대해 쓰고 있다. 자체 담보가 가능한 물류센터조차 없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구영배 큐텐 대표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금조달 계획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당국은 과거 태영건설 워크아웃시 총수 일가에 사재출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미정산 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해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일부 피해 규모가 큰 판매자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구매자와 달리 판매자의 자금 회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물 제품을 취급한 판매자 위주로 정부 차원에서 낮은 금리의 긴급 자금 지원을 해줄 필요도 있다”고 짚었다. 김벼리·박병국·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