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로 인해 환불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한 시민이 티몬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티메프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판매 대금 정산 시한’을 단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유통사들이 납품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정산 대금 시한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 헤럴드경제에 “정산 주기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업계는 대형 유통사에 대한 규제 법령인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시한을 단축하는 방안을 언급한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대규모유통사의 판매대금 지급 시한을 40~60일로 의무화하고 있다. 대규모유통업자들은 매월 판매 마감일 기준 40일 안에 납품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쿠팡 ‘로켓배송’ 같은 직매입 거래의 경우에는 상품 수령일부터 60일 안에 지급하면 된다,
국회도 공감대를 갖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앞서 “정산 주기를 개선하는 문제와 위탁형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 있어 자금 보관 문제를 같이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산 주기 개선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최근 티몬과 위메프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정산 지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오픈마켓 형태의 중개사업자로, 정산과 관련된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소재 모기업 큐텐은 두 회사의 긴 정산 주기를 활용해 판매자(셀러)들의 대금을 사업 확장 등에 썼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관련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하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현행 40일로 규정된 시한을 30일로 단축하고 직매입거래 상품 또한 60일에서 50일로 10일 줄이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무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현실적인 사유로 기한을 준수하지 못하는 유통업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업계는 정산 기한을 얼마나 줄일지에 대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40일을 30일로 줄인다고 해서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합리적인 명분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류광진(왼쪽) 티몬 대표와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티몬·위메프 같은 중개업자에 대한 판매자 대금 정산을 규제하는 문제도 화두다. 현행법상 온라인 중개업자에 대한 대금 정산 규제가 마땅히 없어서다.
일각에서는 대규모유통업법에 온라인 중개사업자에 대한 규제하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티몬과 위메프 등 온라인 중개사업자가 대규모유통업법상 대규모유통업자에 해당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논리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지금도 티몬이나 위메프가 전자상거래법상 규율을 받고 있지만, 대금결제기관이나 소비자에 대한 환불 책임까지도 분명히 규정돼 있진 않다"며 “대규모유통업법도 함께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유통업법 취지상 온라인 중개사업자를 넣는 것이 맞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대규모유통업법을 통해 티몬과 위메프를 규제하려면 배민이나 야놀자 등 모든 온라인 중개업자를 포함해야 하는데 이는 대규모유통업법 취지에 맞지도 않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온라인플랫폼법’이나 대규모유통업자와 온라인 중개업자를 포괄하는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티메프 사태에서 대금을 유용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 회사 내부의 형사적 잘못으로 봐야 한다”며 “정산 주기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겠지만, 업태별로 상황이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