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어 사과와 배꽃이 피기 시작하면 과수 농가와 농업 당국에 비상이 걸린다. 과수화상병 때문이다. 병원균(Erwinia amylovora)의 식물체내 잠복기가 최장 5년으로 길고, 발생이 시작되면 확산속도가 빨라 방제가 어려운 과수화상병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뚜렷한 치료제가 없으며, 그 피해가 치명적인 병이기 때문에 감염된 식물체를 땅에 묻어 제거하는 공적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 처음 발생한 이래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방제에도 불구하고 발생면적이 매년 증가해 2020년 394.4ha(사과와 배 재배면적 약 0.97%)에 발생하여 정점을 이룬 후 작년까지 100ha 내외로 감소했다. 특히, 올해는 봄철 기상 조건이 병 발생이 가장 심했던 2020년과 비슷해 긴장 했지만 작년보다도 발생이 적다. 다만, 장마 이후 혹서기엔 병원균 증식이 억제되므로 올해 과수화상병 대응 위기단계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과수화상병 발생에 유리한 환경조건이 이어졌음에도 발생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감염 의심주 사전제거 노력을 들 수 있다. 겨울철 가지치기 작업과 병행하여 감염이 의심되는 가지나 나무를 발병 전에 제거하는 노력이 효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도 활용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는 공적방제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농가의 참여와 인식이 높아지면서 실효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개화기 예측과 최적시기 예방약제 살포의 효과를 들 수 있다. 과수화상병의 감염은 주로 상처를 통하거나 꽃이 핀 후 화분매개 곤충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개화 직전 구리제나 항생제를 살포하면 근처 원인균이 제거되어 감염위험을 줄일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사과와 배 주산지에 개화기 예측에 필요한 환경 데이터 수집용 기상관측 장비설치를 지원해 예방약제 살포 적기를 지역별로 통보함으로써 예방 효율을 높이고 있다.
셋째, 중앙과 지방의 합동예찰과 조기방제 노력의 성과를 들 수 있다. 매년 병 발생초기부터 위기경보를 격상 발령하여 방제를 강화하고 있고, 관련 규정들도 실효성이 높게 정비해 운영하고 있다. 다발생 지역의 신속 진단을 위하여 과수화상병 현장진단실을 설치했고, 신규 지역 확진시 방제관 파견과 현지대책본부를 긴급 설치해 초동대응을 강화했다. 국립종자원은 묘목이력관리제를 정비하여 과수묘목의 생산과 유통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과수화상병의 확산 억제를 위한 농가의 적극적인 참여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식물방역법을 개정하여 농업인의 교육과 예방수칙 준수를 의무화했다. 병이 발생해도 신고하지 않은 농가는 내년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주변 농가피해와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작년 과수화상병 발생은 우리나라 사과와 배 재배면적의 0.26%인 112ha로 줄었고, 금년은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금년 상반기 물가불안의 주요요인으로 사과 값이 지목되면서 과수화상병에 대한 우려도 매우 컸었다. 그러나 과수화상병은 철저한 사전예방과 조기예찰을 통해 충분히 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병이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