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헌법재판소 심판정. [연합] |
[헤럴득경제=이승환 기자] 임신 32주 이내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입법안을 여야가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性)을 다른 사람에 알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면서다. 다만 여야가 각각 추진 중인 입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규제완화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6일 국회 의원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임신 32주 전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을 수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2건 계류 중이다.
우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인의 태아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취지다.
현행법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을 공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 정지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박 의원은 “남녀 간 성비에 심한 불균형이 초래돼 1987년 의료법에서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고지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도입했다”며 “국민 가치관과 의식 변화로 남아선호사상은 확연히 쇠퇴하고 있고 성비불균형은 해결돼 출생성비는 출산 순위와 관계없이 모두 자연성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는 사회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가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서 추진하는 법안은 성별 고지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태아의 성별 고지를 태아의 성별 감별이 가능한 시기를 16주 이후로 앞당겼다.
유 의원이 마련한 ‘16주 이후’라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16주 이후에 태아의 성별 감별이 가능하다는 조사를 바탕에 두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수술(낙태)을 받은 여성의 97.7%가 임신 16주 전에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의원은 “성비 불균형 심화를 막기 위해 제정된 1987년 당시와 비교하여 오늘날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사상이 일반적인 만큼, 사문화된 조항의 완화를 통해 입법지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만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경우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공백이 생길 수 있어 일반적으로 태아 성별의 구분이 가능한 16주로 완화하여 발의했다”고 말했다.
앞서 헌재는 지난 2월 28일 태아 성별 고지 제한은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한다며 의료법 제20조 2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