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중동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내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혀온 수출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이스라엘-이란 전면전으로 국제유가까지 치솟는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문제는 세수 결손으로 재정 여력이 빠듯한 재정당국의 확실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외발 충격이 현실화한다면 이중고에 놓일 수 있다.
미국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5일(현지시간)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주 발표된 7월 고용지표 여파로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앞서 미 노동부는 7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1만4000명 늘고, 실업률이 4.3%로 상승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미 증시 급락 소식에 전날 코스피는 8.77% 폭락했다. 하락률로는 2008년 10월 24일(-10.57%) 이후 16년 만에 최대다. 다만 현재로선 미국 경기 경착륙을 예단하긴 성급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미국 경기를 평가하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은 연율 기준 2분기 경제성장률이 2.8%를 기록하며 깜짝 성장하는 등 실물 지표 자체를 보면 침체가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고 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지표 둔화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지표로는 경착륙을 단언하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북미유럽팀장) 역시 “미국 실업률 등 지표가 예상보다 악화하긴 했지만 미국 경제가 기술적 침체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달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시장이 빠르게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월가에서도 미국 경기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면서도 침체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둔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9·11·12월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0.25%포인트씩 내릴 것으로 봤다. JP모건체이스와 씨티그룹은 연준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예상하고 있다.
금융시장과 별개로 한국 경제 성장률을 견인했던 대미 수출에 타격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작년부터 미국의 견조한 소비와 투자에 힘입어, 자동차·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대미수출은 가파르게 늘어 전체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18%가량까지 불어났다. 7월 대미수출은 102억달러로, 역대 7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12개월 연속으로 월별 최대 실적이다. 반도체가 핵심인 우리 수출이 마이너스(-)로 갈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장에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설상가상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에 나설 경우 우리 경제에 파급력도 상당할 전망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 수입액이 늘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물가에도 부담이 된다. 이 경우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택하기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가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국제유가는 되레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은 다행이다.
문제는 위기를 타개할 정책적 대안을 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내수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거진 대외악재라는 점이 한국 경제로서는 부담이다. 지난 2분기 소매판매는 작년보다 2.9% 감소했다. 이는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폭 감소다.
2분기 설비투자는 작년보다 1.3%, 건설기성(불변)은 2.4% 감소하는 등 투자도 부진한 모습이다. 정부 재정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점도 악재다.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전년보다 5.6% 감소하며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 된다.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