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어차피 대한민국은 김 부장만 기억해. 박태주라는 이름은 기억 못 해.”
총성 한 방에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바뀐 1979년. 그 해가 다시 한번 스크린에 소환됐다. 바로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신작 ‘행복의 나라’다.
김성수 감독의 천만 영화 ‘서울의 봄’(2023) 이후 9개월 만에 다시 온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관한 작품이자, 배우 고(故)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오는 14일 관객과 만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과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 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최악의 정치 재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실제로 이 재판은 불과 16일 만에 졸속으로 끝난 군사 재판이었다.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 중심에 묵직하게 서 있는 인물이 박태주 대령(이선균 분)이고, 그의 변호인이 정인후(조정석 분)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
박 대령은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다. 박흥주 대령은 박 대통령을 총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이었다. 반면 정인후는 실재하지 않은 캐릭터다. 재판에는 옳고 그름이 아닌 승자와 패자만이 있다고 믿는 변호사다.
그래서 관객은 정인후의 시각을 따라 박 대령의 죄명을 여러 각도에서 따져보게 된다.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일으킨 내란일까,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군인의 불가피한 복종일까.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총살당한 그날 밤을 복기하는 정인후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박태주가 긴박하게 엇갈리며 교차편집되는 시퀀스는 124분 가량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영상미가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
추 감독은 “큰 사건보다는 숨겨진 이야기,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며 “특정 인물을 가리키기보다는 그 시대가 보여준 야만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비극이었던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에 초점을 맞춘 ‘서울의 봄’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의 봄’이 개봉되기 전에 영화 편집이 끝난 상태였다”며 “‘서울의 봄’이 먼저 개봉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거나 편집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제작된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 ‘남산의 부장들’(2020) 등도 이 시기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해당 영화에서는 박 대령이 주변 인물에 그치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런 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 신선하다. 극적으로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나쁜 정치’가 똬리를 튼 당시 시대가 가진 거칠고도 복잡한 속살을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전상두(유재명 분)도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미친 광기의 전두광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다. 극도로 서늘하고 감정이 절제된 전상두는 박태주와 정인후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묵직하지만 은은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
배우들의 ‘진짜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꼼꼼한 사전 취재를 바탕으로 구현해낸 군법정도 극 중 몰입감을 높이는 또 다른 요소다. 추 감독은 군법정 재판 장면을 위해 당시 기록을 고증해 변호인단과 방청객의 위치, 검찰관과 피고인 숫자까지 정확하게 맞췄다.
조정석은 “당시와 똑같이 재현했다고 해서, 그 세트와 공간에 대한 기운을 많이 받았다”며 “촬영을 마치고 혼자 그 안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작품 내에서 대한민국 군인과 한 인간으로서 겪는 박태주의 내적 갈등이 설득력 있게 드러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정인후의 입장에서 박태주가 해석되고, 심지어 전상두와 가장 날선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박태주인데도 그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 없이 후반부까지 내달리다 보니 몰입의 한계가 드러난다.
박태주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울림이 크지 않은 이유다. 더욱이 ‘서울의 봄’이 남긴 강력한 잔상으로 인해 극 중 12·12 군사반란이 전개되는 첫 장면부터 이미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드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한편 영화의 중심 소재가 된 박흥주 재판은 끝나지 않은 오늘날의 역사다. 10·26 사건 가담자로 사형이 집행된 이들의 유족은 역사적 재평가와 복권을 희망하고 있다. 지난 2020년 김재규의 유족은 40년 만에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4월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