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현 글루가 대표이사. [글루가 제공] |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셀프네일 브랜드 ‘오호라(ohora)’를 운영하는 유기현 글루가 대표에게는 8년 전 만난 여성 미화원과의 대화가 그랬다. 2016년 유 대표는 젤 네일을 60%만 굳힌 반경화 필름 스티커를 알리기 위해 코엑스 국제소싱페어에 나갔다. 손톱에 붙이고, 소형 LED 램프에 1분 정도 굳히는 제품이었다.
쟁쟁한 브랜드 속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숙소로 향하는 저녁. “이게 뭐냐”고 묻는 미화원의 손에 유 대표는 직접 젤 네일 필름을 붙여줬다. “봉숭아 물들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고 말하며 깜짝 놀란 미화원을 보고 유 대표는 희망을 봤다. 그는 다음 날, 부스를 무료 네일 체험관으로 바꿨다.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옆 부스에서 항의할 정도로 긴 대기 줄을 형성하며 ‘대박’이 났다.
글루가는 ‘네일’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던 20대 남자 공대생들이 만든 젤 네일 제조회사다. 지금은 세계 27개국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수출하는 연매출 500억원대 기업이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7일 유기현(35) 글루가 대표를 만나 브랜드 오호라의 성공담과 방향성을 들었다.
글루가는 매출의 80%를 미국일본 등 27개국에서 거두고 있다. 첫 진출국인 일본에서는 3년째 붙이는 네일 부문 1위를 지키고 있다. 2022년 진출한 미국에서는 첫해 1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후 연평균 6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작 손톱 하나’가 아니더라고요. 네일을 하기 전과 후, 기분 전환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동전보다 작은 공간인 네일에서 벌어지는 ‘기분 전환’의 힘을 믿는다. 고객은 승무원이나 간호사 등 네일을 오랫동안 즐기기 어려운 직업군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어머니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남성 고객도 늘었다.
글루가. 기업명부터 생소하다. 들어보니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글루(거기로) 가봐’라는 의미를 담은 창업 동아리에서 비롯됐단다. 네일이 최초의 창업 아이템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캐리어 등 7번의 실패를 겪고, 비싼 네일 비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 대표는 공동 창업자인 유태규·안재박 디렉터와 머리를 맞댔다. 천안의 네일샵을 다니며 조사를 시작했다. 큰 덩치의 공대오빠 3명을 마주한 일부 네일샵 점주들은 “영업하지 말라”며 내쫓기도 했다. 그렇게 공대오빠들은 ‘네일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손톱용 스티커를 만드는 ‘디지털 프린터’를 만들었다. 문제는 스티커의 품질이었다. 이들은 네일 스티커 필름 자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다.
유기현 글루가 대표이사. [글루가 제공] |
유 대표는 경기 화성에 있는 OLED 디스플레이용 필름 업체를 무작정 찾아갔다.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며 필름 경화 기술을 배웠다.
3년에 걸쳐 글루가는 젤 네일을 절반쯤 굳히고 손에 붙여 램프 불빛으로 마무리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세계 최초의 반경화 젤 필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유 대표는 “단순한 스티커처럼 보여도 반도체 산업에서 쓰이는 원료와 제조 기술이 녹아 있다”며 “1㎝도 안 되는 젤 스트립도 7개의 층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특허를 낸 해당 기술은 스위스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에서 1등인 ‘금상’을 받았다.
이후 글루가는 조색부터 보석 같은 파츠(parts)를 올리는 디자인 표현력, 그리고 광택과 굴곡을 유지하는 등 전문적인 기술을 축적해간다. 회사는 2017년 아모레퍼시픽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제품 10만개를 납품하며 성장판을 열었다. 2019년 이들은 브랜드 성장을 위해 감탄사를 인용한 ‘오호라’를 만든다. 합리적인 비용과 다채로운 디자인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은 외출이 제한됐던 코로나19 시기에 대성공을 거둔다. 매출이 최정점을 찍은 시점은 유 대표가 해외 수출을 결심한 때다. 재구매율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네일 시장은 1세대 플라스틱 인조 손톱 브랜드를 지나 현재 매니큐어 필름 및 스티커를 개발하는 2세대 브랜드가 흐름을 이끈다.
그는 “세계 시장은 수천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브랜드가 즐비해 잠재력이 크다”며 “세계 네일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HYBE의 르세라핌, 일본·홍콩 디즈니, 가나초콜릿 등 식품예술캐릭터 등 전방위에서 협업도 꾸준하다.
미국 월마트 내에서 오호라 네일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글루가 제공] |
주목하는 시장은 네일샵 가격이 높지만, 자기를 꾸미려는 의지가 강한 소비자가 많은 국가다. 올해 2월과 3월에는 미국 대형마트 체인인 타겟과 월마트 등 2500개 매장에서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내년은 4000개 매장으로 판매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유 대표는 여전히 매출보다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에 1만2000명이 모인 젤 네일 페이스북 커뮤니티가 있는데 ‘오호라’가 어느새 그 커뮤니티의 이름이 됐다”면서 “자발적인 추천을 중요시하는 우리 입장에는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의 목표는 ‘오호라’가 자신을 가꾼다는 뜻의 보통명사가 되는 것이다. 유 대표는 “손·발톱에 바르는 필름이 그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는 것을 사업하며 알게 됐다”며 “모든 사람들이 ‘오호라 했구나’라는 말이 나오도록 꾸준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글루가는 2022년 말 MZ세대를 겨냥한 네일브랜드 젤라또랩을 운영하는 젤라또팩토리를 인수했다. 램프 없이 햇빛만으로 붙일 수 있는 솔라젤을 추가해 제품군도 확대하고 있다. 신소재 개발도 진행형이다. 앞으로 손발 케어 제품으로 상품군을 확대해 차별화된 오프라인 사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글루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