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파리 대회에서 홈팀 프랑스와의 결승전을 앞둔 남자 양궁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정의선(왼쪽부터) 회장, 김우진 선수, 이우석 선수, 김제덕 선수. [대한양궁협회 제공] |
정의선 회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파리대회 양궁 여자개인 시상식 직후 남수현, 전훈영, 임시현 선수들을 축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수현(왼쪽부터), 정의선 회장, 전훈영, 임시현 선수. [대한양궁협회 제공] |
정의선 회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 파리 앵발리드에 있는 연습장을 찾아 양궁 3개 종목(여자개인·여자단체·혼성단체) 금메달리스트 임시현(왼쪽 첫 번째) 선수와 양창훈(가운데)여자 양궁 대표팀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
최근 막을 내린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전 종목 금메달 석권이라는 대기록 달성을 이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경영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은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에서 ‘파괴적인 혁신가’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기업 경영을 양궁에 접목해 체계적 선수 육성 시스템 및 대한양궁협회(이하 양궁협회) 운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일 재계와 경영학계에 따르면 정 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대담성 ▷혁신성 ▷포용성 등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눈앞의 성과’ 보다 공정하고, 정직한 시스템 강조한 ‘대담성’=정 회장은 고 정주영 선대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구축한 양궁 발전 기반을 더 고도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오랜 기간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대담하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에 집중했다.
특히 정 회장은 양궁협회의 공정한 운영 체계 구축을 최우선 실천 과제로 제시했다. 지연·학연 등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현재의 경쟁을 통해서만 선정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 전 양궁 국가대표들은 “국제대회보다 더 피 말리는 경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수 선수 육성 체계도 강화했다. 인재들을 미리 찾기 위해 2013년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 대표 선수단을 신설해 장비·훈련을 집중 지원했다. 이를 통해 ‘유소년대표(초)-청소년대표(U16)-후보선수(U19)-대표상비군(U21)-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 3관왕에 오른 김우진 선수는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를 묻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 공정하고 깨끗한 양궁협회, 그리고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걸 지원해 주는 정 회장”이라고 답했다.
▶급변하는 스포츠 환경에 선제 대응 나선 ‘혁신성’=정 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스포츠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을 접목한 혁신적인 전략 수립에도 공을 들였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대회가 끝난 직후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자동차 연구개발(R&D) 기술을 선수들 훈련과 장비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사례는 정 회장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
정 회장 제안으로 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즉시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센터를 주축으로 양궁협회와 함께 기술 지원방안을 협의했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대비한 기술 지원을 하게 됐다. 이 같은 노력은 전 종목 금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대회 때마다 새로운 훈련 장비와 기술들을 적용했다.
특히 선수들이 실전에서 겪을 다양한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훈련법을 도입해 이에 대비하는 한국 양궁 시스템은 스포츠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정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누구보다 먼저 준비하는 ‘미리미리 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야구장·축구장 훈련과 실제 경기장을 재현한 연습경기장에서 실전보다 더 실전처럼 연습하는 한국 양궁의 대표적인 훈련 방식도 이렇게 탄생했다.
▶현장에서 소통 창구 활짝 연 ‘포용성’= 정 회장의 ‘소통 리더십’도 주목받는다. 이번 파리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남녀 선수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정 회장을 언급했다. 임시현 선수는 “한국 양궁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정 회장님”이라며 “정 회장님이 많은 지원을 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회장님이) 저희에게 너무 고생 많았다고 말씀하시며 격려해 주셨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역시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 회장 특유의 리더십에 수차례 감동했다”며 “정 회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내가 업혀 간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양궁협회와 국가대표 선수단이 정 회장의 꼼꼼한 준비와 정성 덕분에 성적을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회장은 주요 국제 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직접 찾아 응원단장 역할을 자처했다. 바쁜 일정에도 지난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 취임 이후 주요한 국제대회는 모두 참석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수들에 대한 정신적 멘토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상대가 개최국 프랑스로 정해지자 선수들에게 “홈팀이 결승전 상대인데 상대팀 응원이 많은 건 당연하지 않느냐. 주눅 들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 우리 선수들 실력이 더 뛰어나니 집중력만 유지하자”며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 회장은 전국 각 지역에서 양궁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지난해 한국 양궁 60주년을 맞이했을 때 정 회장은 “운동장의 빛이 안 드는 곳에 계신 분까지 모두 챙기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한국 양궁의 발전이라는 정 회장의 명확한 비전에 대한 공감대와, 현장과 협회 간 역할의 균형을 통해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파리대회 전 종목 석권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며 “협회 역시 정 회장의 진심·철학·원칙들이 왜곡 없이 온전히 현장에 전달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