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사기’ 판치는데 내부통제는 부실…캐피탈·카드사 제재 근거도 없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최근 4년 간 여신전문금융회사 16곳에서 무더기로 중고차 대출 사기가 발생한 가운데, 내부통제도 부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올해 4월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마련했지만, 내부통제가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금융사 임직원을 직접 제재하는 법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카드사·캐피탈사도 속수무책…3년 간 149억원 피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고차 대출 사기를 당한 카드사·캐피탈사는 총 16곳으로, 피해 규모는 148억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업체는 위 금융사들로부터 상용차 구매자금대출, 이른바 ‘재고 대출’을 받았지만 차량을 인도하지 않았거나 파손 차량을 인도한 후 잠적하는 등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6곳 중 11곳은 대출차주와 공모해 허위 대출을 일으켰는데, 사기 행각에 가담한 대출차주가 이득을 얻지 못하자 금융사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전말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신 통계인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중고차 거래량은 약 380만대로, 신차 구매량보다 1.2배 높으며 거래 금액은 30조원에 육박한다. 이에 여전업계에선 불투명한 중고차 거래 시장에 대형 금융사가 진출해 ‘투명한 중고차 거래’를 담보하겠다고 나섰지만, 내부통제가 부실해 오히려 대거 사기를 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피해 금융사 중에는 KB국민카드가 26억6400만원으로 피해 규모가 가장 컸고, 캐피탈사 중 자동차금융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현대캐피탈도 18억2800만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캐피탈은 사고 금액의 57.1%를 환수했지만, 피해규모가 큰 국민카드는 환수율이 7.5%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 특성상 불황에 사기가 급증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차량을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디지털 대출이 정착하면서 사진을 받아 진위를 파악하는 등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사 특성상 실적 압박이 있어 대출을 대거 실행했을 수도 있다”면서 “중고차 판매 업체에 차 구매 대금을 빌려주는 재고 대출 상품 자체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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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전사·캐피탈사 금융사고 규모 92억원…제재 법 없어

이에 현대캐피탈 등 금융사들은 AI 정밀 판독 시스템을 도입해 실사 확인 절차를 개선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섰고, 금융당국도 ‘중고차 영업관행 개선 가이드라인’ 개정에 나서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사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사고가 발생한 금융사를 직접 제재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서 이같은 내용을 꼬집기도 했다. 입법조사처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여전사의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 규모는 92억2400만원으로,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다.

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은 2021년을 제외하고 연도별 사고 규모를 살펴보면 2018년엔 53억2900만원, 2019년 35억2800만원, 2020년 8억1100만원, 2022년 7억9500만원으로, 지난해의 경우 롯데카드에서 발생한 대형 배임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발생한 중고차 사기의 경우 내부 직원이 연루된 경우는 없지만, 만약 중고차 업체나 대출자와 공모했다면 횡령·배임죄에 해당한다. 현행법상 ‘은행법’, ‘상호저축은행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에선 임직원의 횡령·배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근거를 두고 있지만, ‘여신전문금융업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에는 이와 같은 제재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의 임직원이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장의 건의에 따라 해당 임원의 업무집행 정지를 명하거나 주주총회에서 그 임원의 해임을 권고할 수 있으며, 경고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호저축은행법과 자본시장·금융투자업법에서도 금융위가 문제가 되는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주의·경고 또는 해당 임직원에 대한 주의·경고·문책 및 6개월 이내의 영업의 일부정지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당국은 여전업권·상호금융업권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지난해 11월 여신전문금융업권 내부통제 개선방안을 마련했고, 올해 4월에도 내부통제 관련 모범규준의 제·개정을 완료했지만 이는 자율규제 성격에 그친다.

입법조사처는 “금융당국은 두 업권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한 내부통제 개선방안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율규제와 함께 다른 업권의 관련 입법례를 참조해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22대 국회에는 금융당국의 여전사·상호금융권 제재를 골자로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신용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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