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떨리는’ 차례상…과일·채소만 담았는데 10만원 ‘훌쩍’

지난 23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기자가 장바구니에 담은 추석 차례상 품목들. 25개 제품을 담았는데 25만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연합]·김벼리 기자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대형마트. 입구 바로 앞 과일과 채소 판매대를 돌며 4인 가구 기준 추석 차례상에 필요한 제품을 담았다. 10만원이 금새 초과됐다. 정육이나 해산물 판매대를 가기도 전이었다.

기자가 장바구니에 넣은 과채류 상품은 12가지였다. 가장 비싼 건 과일·견과류였다. 사과 5개(1만3900원), 배 5개(1만8900원), 곶감 12개(1만1800원). 대추 500g(1만4900원) 네 가지만 해도 6만원에 육박했다. 최근 폭염에 가격이 급등한 배추는 한 포기에 5480원, 무는 1개에 3980원이었다. 여기에 소·돼지·닭고기 등 육류와 조기·북어포 등 수산물을 비롯해 청주 등 나머지 상품까지 추가하니 25개 품목에 총 25만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열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추석차례상 시연 행사에서 간소화 차례상 차림이 소개되고 있다. [연합]

올해 추석 연휴를 약 3주 앞두고 차례상 물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가격조사기관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4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평균 비용은 대형마트 기준 40만3280원이었다. 2022년 39만5290원보다 2% 올랐다. 같은 기간 전통시장에서는 30만원에서 30만9000원으로 3% 증가했다.

올해 추석 차례상 물가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서 소폭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물가정보 관계자는 “작년 추석에 과일값과 채솟값이 많이 올랐는데, 올해는 폭염 등 우려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이라면서 “폭염 상황에 따라 축산물 폐사 등 상황이 얼마나 악화할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부터 폭염이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먹거리 수급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에서는 열대야 일수가 36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여기에 최근 9호 태풍 ‘종다리’의 여파로 고온다습한 수증기 덩어리가 내륙에 머물면서 찜통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농축수산물의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5% 올랐다. 같은 기간 총 소비자물가지수(2.6%)보다 두 배 넘는 증가폭이다. 농산물은 9%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생산자물가지수에서도 농림수산품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6% 올랐다. 전체 지수(0.3%)보다 5배 이상 큰 상승폭이다. 농산물과 축산물이 각각 1.6%, 0.4%, 수산물은 2.2% 올랐다. 특히 배추·무 등 시설채소를 중심으로 채소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은 꾸준히 오름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상추와 오이의 생산자 물가는 한 달 새 각각 171.4%, 98.8% 올랐다.

배추도 포기당 소매가격이 최근 7000원을 돌파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3일 기준 배추 포기당 가격이 7306원이라고 밝혔다. 전월(5310원)보다 37.6% 오른 가격이다. 평년 가격(5692년)과 비교해도 28.4% 비싸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30년째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정모 씨는 “올해는 폭염도 폭염이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작황이 매우 안 좋아졌다”며 “절반 정도는 상해서 폐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점 개당 평균 소매가격은 3901원으로 4000원이 눈앞이다. 전월(2864원)보다 36.2% 늘었고, 평년(2617원)보다 49.1% 증가했다.

서울 한 대형마트의 과일 판매대 [연합]

추석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과일 물가도 안심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올해 초 ‘사과 대란’ 이후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싼 품목도 있다. 배는 지난 14일 기준 10개 평균 가격이 6만9992원으로 전월 평균(8만4379원)보다 17.1% 줄었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114.7% 높았다.

닭·돼지 등 축산물 상황도 심상치 않다. 행정안전부의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 6월 1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폐사한 가축은 99만7000마리에 달했다. 닭, 오리 등 가금류가 93만7000마리, 돼지는 6만마리였다. 폭염에 폐사한 양식 어류도 567만2000마리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가축 전염병 확산 우려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박이 커졌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농산물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 물량과 민간 물량을 추가 확대 공급한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3일 제31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최근 주요 성수품 중 사과·배는 작황이 양호하고, 햇과일 출하 이후 가격이 안정화되는 추세이며 축산물도 가격이 안정세”라면서 “배추·무, 시설채소의 경우 길어진 폭염의 영향으로 가격이 높게 형성된 만큼, 품목별로 가용 수단을 동원해 수급 안정에 힘써달라”고 말했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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