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법조경력 요건 완화도 필요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법관 임용의 트랙 자체를 3개로 다양화하는 것입니다.”(전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법관 증원도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법행정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법원은 최소 5년 이상 경력을 쌓은 검사·변호사를 법관으로 뽑고 있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내년부터는 5년에서 7년으로 경력 요건이 높아져 법관 수급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최소 법조경력 요건에 대한 논의보다 중요한 건 법관 임용트랙을 3개로 다양화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3개 트랙 임용, 재판 지연 해소·법원 다양화”=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부장판사가 밝힌 3개 트랙 임용이란 ▷법조 경력 3년 이상인 사람 중 45% ▷7년 이상인 사람 중 45% ▷20년 이상인 사람 중 10%를 각각 채용하는 방안이다.
그는 30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력요건을 극단적으로 낮추면 다양한 배경의 판사를 뽑겠다는 법조일원화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대신 3개 트랙을 통해 법관을 병렬적으로 임용하면 재판 지연 문제도 해소하면서 법조일원화 제도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퇴임한 김선수 전 대법관도 비슷한 방안을 제안했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 1일 퇴임식에서 “법관 임용트랙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사법행정 제도에 대한 개선을 당부했다.
김 전 대법관은 “재판 지연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 신속한 재판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합의부 배석판사로 시작할 법관은 경력 5년 이상인 사람 중 임용하는 방안을 유지하고, 전담법관제도, 원로법관 제도 등을 통해 장기간의 법조 경력자를 병렬적으로 임용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 중 법조일원화 제도를 운영해 온 벨기에도 3개 트랙 법관 임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배석 판사는 3년 단독 재판부 법관은 7년, 합의부 재판장은 10년의 경력을 요구하는 식이다. 당초 벨기에도 5년 이상의 경력자만 법관으로 임용했지만, 법원의 고령화로 법을 바꿨다.
▶급여 인상·처우 개선 이뤄져야=이 밖에도 법관의 급여 인상, 처우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도 끊이지를 않는다.
법관은 공무원 3급 이상에 해당해 급여가 적은 편은 아니다. 법조경력 5년 신임 법관의 보수는 연 7300여 만원(원천징수세액, 기여금 등 공제 전)이다. 하지만 대형 로펌 변호사의 경우 법관보다 급여가 최소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 A씨는 “연봉이나 처우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사실”이라며 “판사 임용을 목표로 했던 재판연구원이 대형 로펌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정년까지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며 근무해야 하는 ‘지방 순환 근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법관이 원하는 근무지에 머무르게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법원도 민간 로펌처럼 업무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당장 법관을 증원할 수 없다면, 보조 인력인 재판연구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받고 있다. 재판연구원은 사건 검토 보고와 판결문 초고 등을 작성하며 법관을 지원한다. 현재 350명에 불과하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3월 내부에 팀을 꾸려 이같은 재판지원·인사제도 개선 등에 관해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 B씨는 “전반적인 개선책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며 “장단점을 비교하고 있는 단계라 아직 결론을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안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