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로고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3년 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재진출하며 ‘반도체 왕국’ 재건을 노리던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매각 등 종합적인 구조조정안을 검토중이다. 파운드리에서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데다, TSMC·삼성전자와의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를 살리려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던 사업을 회사 붕괴를 막기 위한 최우선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택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인텔이 백기를 들면서 삼성전자가 반사 이익을 누리고, ‘TSMC 천하’가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인텔은 오랫동안 거래해 온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 등과 함께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선다. 전 세계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은 물론, 파운드리 부문을 아예 분리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프로그래밍 가능 칩 부문(programmable chip unit)의 매각도 선택지의 하나다. 해당 사업 부문은 반도체 칩을 다양한 용도로 맞춤 제작하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2015년 인텔이 반도체 칩 생산업체 알테라를 인수 합병하면서 만든 것이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인텔이 이 사업부의 기업공개(IPO)를 하는 대신 다른 반도체 기업에 완전히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잠재적인 인수자 중 하나는 반도체 설계업체인 마벨 테크놀로지라고 전했다.
인텔의 최고기술자였다가 12년 만인 2021년 2월 인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파운드리 사업 재건’을 외치며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전 세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인텔이 자사 CPU만 찍어내도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에 맞먹는 수주 실적이 쌓이는 데다, 유일한 미국 파운드리라는 강점까지 앞세워 선두 TSMC를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투자 비용이 예상을 뛰어넘으며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앞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치며 상실한 기술 인재와 시장 평판은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한계였다. 여기에다 인공지능(AI)시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로 패권이 넘어가면서 주력인 CPU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올해 인텔의 주가는 60% 이상 폭락했고, 올 2분기에만 2조원 넘는 손실을 내면서 1968년 회사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이에 인텔은 지난달 초 전체 직원의 15%를 감원하고 연간 자본 지출도 20% 이상 축소하는 등 100억달러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달 중순께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서 인텔 경영진은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 등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다. 로이터는 “이달 중순 이사회 회의는 한때 반도체 제조의 제왕이었던 인텔에 매우 중요한 회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 등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등 K반도체가 일정 부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독주하는 가운데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수 있는 대안 기업으로서 삼성전자 입지가 단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부문 매출 188억4700만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61.7%로 1위를 고수했다. 삼성전자는 매출 33억5700만달러, 점유율 11%로 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