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지정학은 물론 지경학·경제안보 고민할 때” [2024 코리아헤럴드 HIT 포럼]

오세훈 서울시장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4 코리아헤럴드 HIT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미·중 간 패권 전쟁과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중장기적 안목에서 경제외교(Business Diplomacy)를 적극 펼쳐야 한다는 각계 전문가의 조언이 이어졌다.

코리아헤럴드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2024 HIT(Humanity In Tech) 포럼’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를 통해 “과거 한·미 관계는 북핵문제 등 안보 문제 위주였지만 최근엔 반도체, 바이오 등 경제문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경제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업외교 시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오 시장을 비롯해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미국 대형 로비업체 발라드파트너스의 설립자인 브라이언 발라드 대표, 국제정치학자 김지윤 박사 등 각계 전문가와 유력 인사가 모여 미국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의 글로벌 대관 현황과 리스크 관리를 논의했다.

오 시장은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지정학은 물론 지경학(Geo-economic)까지 고민해서 생존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영 헤럴드미디어그룹 대표 역시 “미·중 패권 갈등, 공급망 문제 등 글로벌 불안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우리 기업이 미국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우리 기업의 미국의 성장 동반자라는 걸 잘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한 미국의 글로벌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부정적 인식이 강한 ‘로비’가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경제, 비즈니스 외교라고 강조했다.

‘미국 대선과 기업의 위기대응’이란 주제로 열린 특별대담에 나선 발라드 대표는 로비활동이 미국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묻는 김지윤 박사의 질문에 “정책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발라드 대표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30년 지기로 알려졌으며, 2018년 정치외교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선정한 “트럼프 정부의 워싱턴DC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이기도 하다.

패널토론에 참석한 야콥 에드버그 GR컴퍼니 대표 역시 “한국에선 로비가 뇌물과 연결돼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로비를 ‘비즈니스 외교’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면서 “비즈니스 외교가 없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며 “(특히 유럽의 경우) 법규나 제도를 논의하는 시작단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로비활동을 통해 포함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로비가 섬세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라드 대표는 업종에 따라 로비의 대상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위산업의 경우 연방정부가 더 중요하지만 반도체 산업이나 친환경 업종 등은 주(州)정부를 상대로 대관 활동을 펼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주마다 규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로비스트가 도울 부분이 많다”며 “규제 환경이 어떤지 알고 있는 로비스트가 아닌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외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때 자국 정부나 대사관 등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며 스스로 로비활동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 대선 이후를 섣불리 예측해 특정 진영에 너무 공을 들이기보다는 누가 당선이 돼도 공백이 없도록 로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라드 대표는 일본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역시 미래지향적 사고를 토대로, 눈앞의 현안에 급급해 로비를 하지 않고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선 승리와 무관하게 50~70년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에 따라 기업이 성향이나 정책을 바꿀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나갈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라드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많은 기업이 중국과 협업을 하는 사실을 미국에 숨기고 싶어할 수 있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을 면밀히 감시하고 들여다 볼 것”이라며 “중국과 관련된 부분은 솔직하고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관세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라면서 “관세는 경제뿐 아니라 외교 등 다양한 이유로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폴 공 루거센터 선임연구원의 사회로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도 한국 기업의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로비활동을 위한 제언이 이어졌다.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 등을 역임한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미국에서 한국 기업 로비 활동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기업 위주로 단기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중장기 목표를 위해선 주정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로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중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업 본사 최고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전략적 시각으로 로비활동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명망 높은 고위 관료를 로비스트로 활용한다 해도 장기적으론 로비 역량이 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고문 역시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그에 대해 로비업체마다 다르게 볼 수 있다”며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나 기업이 전반적인 전략 차원에서 (로비업체가 제공한)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으면 로비스트 의견에 휘둘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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