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R(Recession, 침체)의 공포’가 미국은 물론 한국 등 글로벌 증시에 대한 투자 열기를 급격히 식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2년여 만에 나타난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해소 흐름이 오히려 경기 침체의 전조 증상이라는 분석이 나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무려 559일 만…‘역대 최장기’ 장단기 금리 역전 해소=11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경제통계(FRED)에 따르면 지난달 27을 기준으로 ‘단기물’을 대표하는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장기물’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보다 높게 유지됐던 역전 현상이 해소됐다.
지난 2022년 7월 6일부터 시작됐던 역전 현상이 해소된 것은 무려 559거래일 만으로, 역대 최장기 기록이다. 기존 역대 최장기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 기록은 445거래일(1987년 8월 18일~1980년 5월 1일)이었다.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해소된 가장 주된 요인은 오는 17~18일(현지시간) 개최되는 9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피벗(pivot, 금리 인하)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9월 FOMC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확률을 100%로 반영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계단식’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식’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 ‘닷컴버블’·2007년 ‘글로벌금융위기’ 악몽 소환=일반적으로 장기 국채 수익률이 단기 수익률에 비해 더 낮을 것이란 예상은 향후 경제 성장세가 약화될 것이란 의미인 만큼, 장단기 국채 수익률 역전 현상이 해소되는 것은 경기 침체 위험성이 낮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빠른 속도로 역전 현상이 해소되는 것은 오히려 경기 침체의 지표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톰 에세이 세븐스리포트리서치 설립자는 “미 연준이 시장의 예상과 바람대로 급하게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경기 침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한다는 의미”라면서 “투자 심리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 해소 시점에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경기 침체 쇼크가 발생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걱정을 더하는 요소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1976년 6월 1일 이후 시점부터 제공 중인 미 FRED의 장단기 국채 수익률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장단기 국채 수익률 역전 현상이 해소된 사례는 최근 2년간을 제외한다면 크게 9번으로 볼 수 있다. 이중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역전 해소 후 1년간 하락한 경우는 단 2회에 불과하지만, 전문가들이 해당 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시점에 발생한 데다, 장단기 국채 수익률 역전 현상이 장기간 이어진 후 해소됐다는 점에서 최근 2년의 상황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2월부터 역전된 장단기 국채 수익률이 같은 해 12월 29일 정상화됐을 때는 ‘닷컴버블’로 불리는 미 증시 폭락장세가 벌어진 시점과 일치했다. 이후 1년 간 S&P500 지수의 하락률은 13.04%에 달했고, 22개월간 하락세를 지속한 2002년엔 ‘반토막’ 수준까지 지수가 내려 앉기도 했다.
또 다른 역전 해소 사례인 2006년 6월~2007년 6월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하기 직전 시점이었다. 역전 해소 후 1년간 S&P500 지수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10.33%나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 연준은 긴축에 따른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장단기 국채 수익률 정상화 시점에선 자연스레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곤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의 해소만을 보고 침체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비합리적이란 반론도 나온다. 실제로 헤럴드경제의 분석 결과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기간이 445거래일(1978년 8월~1980년 5월), 294거래일(1980년 9월~1981년 11월), 136거래일(1988년 12월~1989년 6월), 123거래일(1981년 12월~1982년 7월) 등으로 이어졌을 때 S&P500 지수는 역전 해소 후 1년간 각각 25.03%, 15.89%, 12.59%, 48.85% 씩 상승한 바 있다.
▶“코스피, 美 침체 공포 선반영…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대응”=미 경기 침체 공포는 이미 코스피 지수에 악재로 반영되는 모양새다. 전날 코스피 지수는 장 초반 2500 선까지 붕괴하기도 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의 분석 결과 코스피 시장 상장주 중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은 ‘제로(0)’였던 반면, ‘52주 신저가’ 종목 수는 106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초 발생했던 ‘블랙 먼데이’의 경험까지 소환하면서 투자자의 불안 역시 가중되는 모양새다.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인공지능(AI) 기술 기업의 실적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와 레거시 반도체의 수익성 둔화로 국내 증시를 견인할 대형 주도주가 없다는 점 때문에 (코스피 지수가) 8월 초와 같은 급락세를 기록한 후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증시 전반에서 하락 장세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은 아직 이르지만, 그동안 증시를 떠받쳤던 기술주 랠리 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올 하반기 코스피 지수 예상 밴드를 2400~2800포인트로 기존 대비 하향 조정한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이 50조원 더 늘어날 것이란 증권가의 기존 예상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면서 “상승 각도가 낮아질 것으로 보이는 미국 증시로 대표되는 글로벌 경기의 하향세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가능성, 부동산 폭등으로 지연됐던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개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무역 분쟁 리스크 등이 국내 증시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