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왔는데 전어는 어디로…수온의 변심, 생선이 떠났다 [수산물 지도가 바뀐다]

#. 충남 서천군에서는 ‘서천 홍원항 자연산 전어 꽃게 축제’가 한창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예년만 못하다. 올해 전어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이다. 올해 서천군 어촌에서 잡은 전어 수는 작년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축제 현장에서는 전어를 ㎏당 4만5000원에 팔고 있다. 지난해에는 4만원이었다. 축제 관계자는 “물량이 줄면서 축제에 들여오는 전어 가격이 지난해보다 두 배가 됐다”며 “가격 인상 폭을 최대한 낮췄는데도 매출이 20%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한반도 수산물 지도가 바뀌고 있다. 12일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2년까지 55년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약 1.36도 올랐다. 같은 기간 기록한 지구 평균 표층수온 상승률(0.52도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

바다 기온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해양 생물의 주거지도 바뀌고 있다. 차가운 해류에 적응하는 성질을 가진 ‘한류성 어종’은 따뜻해진 바다에서 벗어나 더 차가운 북쪽으로 이동했다. 따뜻한 해류에 적응해 사는 ‘난류성 어종’ 역시 적정 수온를 찾아 북쪽으로 옮기고 있다. 그보다 더 온도가 높은 수온에서 사는 ‘열대·아열대 어종’도 최근 제주도 등 한반도 남쪽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고수온 영향에 취약한 건 ‘회유성 어종’이다. 회유성 어종은 먹이 활동이나 산란 등을 이유로 선호하는 수온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특징이 있다.

최근 어획량이 가장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는 어종은 살오징어다. 식용 오징어 하면 떠오르는 오징어가 바로 살오징어다. 살오징어는 2010년대부터 어획량이 줄고 있다. 주요 어장인 동해 연안의 수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살오징어 서식지가 보다 먼 바다로 이동한 영향이다. 최근에는 동해보다 서해와 남해에서 주로 살오징어가 잡힌다. 연평균 수온 상승폭은 동해가 서·남해를 비롯해 한반도 연안 전체보다도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살오징어의 생산량은 2018년 4만6274톤에서 지난해 2만3343톤으로 반토막이 났다.

‘국민 생선’으로 불렸던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 명태도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명태의 적정 서식 수온은 10도 아래다. 1970년대 중반, 명태의 연간 어획량은 6만톤이 넘었다. ‘맛 좋기로는 청어,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2017년에는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2019년부터는 어획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한치도 마찬가지다. 한치는 제주도에서 많이 잡혔는데, 최근 수온이 급격히 오르며 남해로 북상했다. 제주 내 한치 어획량이 줄면서 한치를 금에 빗댄 ‘금치’, ‘금징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반대로 난류성 어종은 어획량이 대체로 늘고 있다. 최근 금어기가 끝난 꽃게도 난류성으로 분류된다. 수온이 높을수록 생육 활동이 활발해져 크기가 커지고 맛도 좋아진다. 꽃게 생산량은 2018년 1만1770톤에서 지난해 2만7150톤으로 130.7% 급증했다.

겨울을 대표하는 생선인 방어의 어획량도 증가세다. 방어 어획량은 1990년대 평균 약 5000톤 수준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해 2022년에는 2만톤이 넘게 잡혔다. 지역별 어획 비중도 바뀌고 있다. 동해에서 방어 어획 비중은 2000년대까지 20%였는데, 최근에는 40%까지 높아졌다.

적도 지방을 중심으로 서식하던 열대 어종도 최근 제주도나 독도 연안 등에 출몰하고 있다. 주요 출현 어종은 자리돔, 줄도화돔, 파랑돔, 세줄얼게비늘, 가시망둑, 황놀래기, 그물코쥐치 등이다. 특히 자리돔의 비중이 높다.

어획량 변화에 수산물 가격은 들쭉날쭉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갈치의 평균 소비자 가격은 마리당 1만6291원이었다. 최근 5년 평균 가격(7995원) 대비 130.8% 올랐다. 냉동 오징어의 평균 가격은 마리당 5592원으로, 최근 5년 평균(4369원)보다 28% 올랐다.

수산물 지도가 바뀌면서 유통업계의 물량 확보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대형마트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등 유통사들은 수산물 어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산과 같거나 비슷한 어종을 해외에서 들여오기도 한다. 물량을 많이 확보한 어종은 ‘최저가’ 혈투를 벌인다. 최근 벌어진 꽃게 가격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기후 변화가 진행형이기 때문에 수온은 느리든 빠르든 계속 오를 것이고, 그만큼 수산물의 서식지도 바뀔 것”이라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자연현상 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벼리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