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아시아에서 중국과 대적할 나라는 인도 뿐입니다”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현 한국외교협회장)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친한계 인사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할 때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하고, 우리가 대인도 외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8년부터 3년 6개월간 제16대 주인도대사를 지낸 신 전 대사를 서울 서초구 소재 한국외교협회에서 만났다. 1973년 외교관들이 퇴임 후 공공외교와 민간외교에 기여하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외교협회는 전·현직 외교관 2000여명이 회원으로 소속돼 있다.
신 전 대사는 현대의 인도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민주주의’와 ‘경제’를 꼽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경제 성장의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인도를 코끼리에 비교하는데, 요즘 그 코끼리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뛰고 있다”며 “가능성이 무한대인 나라”라고 말했다.
▶“안정된 정치체제, 모디의 리더십…야당의 선전”=모디 총리는 올해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해 10년에 이어 추가 5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다만 집권당인 인도민당(BJP)은 예상과 달리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번 총선에서 모디 총리와 경쟁했던 정치 명문가 출신의 라훌 간디 전 인도국민회의(INC) 총재가 2014년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인도 의회 공식 야당 지도자에 올랐다. 그동안 BJP의 압승으로 INC는 야당 지도자 자리도 확보하지 못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99석을 얻으며 543석의 연방하원 의석 중 10% 이상을 확보해 의회 규정에 따른 야당 지도자 타이틀을 쥐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신 전 대사는 “모디 총리와 집권 여당, 야당에도 좋은 조금은 특이한 결과”라며 “집권당이 단독 과반을 하지 못하면서 연립 정부를 구성했는데, 여전히 모디 총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상당하지만, 국민들이 일방적인 독주를 막은 것”이라는 현지의 반응을 전했다.
모디 총리는 1971년 인도국민의용단(RSS)에 가입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힌두 근본주의’를 표방한 RSS를 기반으로 BJP에 입당했고, 2001년 구자라트주지사에 올랐다. 모디 총리의 정치적 기반은 인도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를 바탕으로 하는 ‘힌두 내셔널리즘’이다. 이는 반대로 무슬림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확보한 정치적인 안정성은 최대 성과로 꼽힌다. 신 전 대사는 “내각책임제 국가이면서도 대통령제보다 훨씬 더 안정된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모디 총리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확보한 정치적 안전성이 인도에 진출하려는 기업에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약 7억명의 유권자가 6주에 걸쳐서 100% 직접 전자투표를 실시한다. 북부 히말라야 해발 4237m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의 12명 유권자를 위해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산소통을 메고 산을 오른다. 코끼리떼가 우글거리는 밀림지역에도, 지뢰가 깔린 반군 점령지도 지나 투표함이 찾아간다. 이렇게 인도 전역에 100만개의 전자투표함이 설치된다.
전자투표를 인증하는 특수한 잉크를 검지 손가락에 길게 바르는 문화, 선거 기간이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축제고,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유권자를 위해서 당 이름과 당을 상징하는 그림을 함께 명기한다. 선거 기간에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비판하지만, 이 자체를 즐기는 ‘선거 축제’가 된다.
신 전 대사는 “물이 담긴 주전자를 데우면 연기가 생기는데, 이를 막으면 나중에는 주전자가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씩 새어 나오게 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비유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하루에 10㎞씩 연장되는 고속도로”=모디 총리에 대 국민적 지지는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경제 성장을 꼽는다. 첫 집권 당시 실시한 ‘클린 인디아’ 혁명이 대표적이다. 모디 총리는 집권 5년간 전국에 화장실 1억개를 설치했다. 또한 1억 가구에 은행통장을 개설해 국가지원금의 투명한 지급이 가능해져 부정부패를 막았다.
또한 모디 총리의 ‘비즈니스 프랜들리’도 상징적이다. 모디 총리가 고향인 구자라트주에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주총리로 재직하면서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인도의 대표 대기업인 타타그룹의 회장 라탄 타타를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구자라트주는 인도의 경제적 중심지로 떠올랐고, 타타그룹은 반도체 제조 공장, 배터리 저장 공장 건설도 준비하고 있다.
주총리 시절 한국을 방문해 제조업 기반의 성장 동력을 목격한 모디 총리는 총리 집권 후 국가 성장 발전의 모델상으로 한국을 제시했다. 현재도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이 진행 중이다. 신 전 대사는 “고속도로, 철도 항만 사업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며 “지금도 하루에 10㎞씩 고속도로가 연장되고 있고, 시속 200㎞ 되는 철도가 7개가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전 대사는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2023년 기준 2612달러)인데, 1만달러까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민주주의의 정치적인 안정,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가 개발에 대한 집념을 모두 갖춘 나라가 인도”라고 강조했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경제·안보 측면에서 적극적인 對인도정책 필요”=최근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4자 안보대화)에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모디 총리는 3선 임기를 시작한 직후인 지난 7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고, 8월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이에 대해 신 전 대사는 “인도는 과거 비동맹 외교의 전통에 자부심이 있고 국력도 있는 만큼 독자외교를 하고 있다”며 “인도는 ‘다자간 연맹외교’(multi alignment)로, 어느 나라와도 군사동맹은 하지 않겠다는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는 절대 어느 한쪽에 서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며 “서로 인도를 끌어들이려고 하고, 이 사이에서 인도는 국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인도와 보다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세계 4~5위 군사력의 핵무장 국가이자 세계 최초로 무인우주선이 달 남극 연착륙에 성공하는 능력을 가졌다”며 “아시아에서 중국이 신경 쓸 수 있는 나라는 인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군사 전문 분석 기관인 IHS에서 발표한 2024년 글로벌 파이어파워(세계 군사력 지수)에서 중국은 0.0706으로 3위, 인도는 0.1023으로 4위, 한국은 0.1416으로 5위다.
이어 “인도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면에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며 “우리가 대(對)인도 외교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