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정 작곡가의 ‘수제천 리사운즈(壽齊天 resounds)’ 리허설 현장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득한 시절을 그리워하듯 유려한 선율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 1500년 전 배제의 ‘정읍사’를 원곡으로 한 최우정 작곡가의 ‘수제천 리사운즈(壽齊天 resounds)’. 아름다운 자연이 생동하던 그 날들을 기억하던 멜로디는 이내 조금은 스산한 음울이 얹어진다. 난데없이 끼어드는 금관 악기의 경고가 위태로운 내일을 상징한다.
최우정 작곡가는 “‘수제천’은 나를 상당히 편안하게 만드는 음악”이라며 “‘수제천’을 들었던 기억에 의존해 일종의 리액션(반응)으로 곡(수제천 리사운즈)을 썼다”고 돌아봤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제천’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위촉한 최우정 작곡가의 ‘수제천 리사운드’는 지난 13일 세종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에코 앤 에코(ECO& ECHO)’ 공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오는 11월 30일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관객과 만난다.
‘수제천 리사운즈’는 두 악장으로 구성했다. 첫 악장은 ‘오래된 음악들의 메아리’로 과거의 자연에 대한 회상이 담겼고, 두 번째 악장은 ‘먼 훗날로부터 오는 메아리’로 사라져가는 자연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최우정 작곡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그는 “한국 전통음악은 자연을 컨트롤하지 않고 자연과 대위법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가는 것이 특징이다”라며 “절에 있는 종소리만 해도 자연의 열린 공간에서 소리를 내고, 그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풀벌레 소리, 새소리도 함께 들린다. 자연 고유의 소리와 음악이 서로 밸런스를 맞춰가며 연주하는 방식을 음악으로 담았다”고 했다.
곡의 흐름은 공연의 전체 프로그램과 함께 한다. ‘수제천 리사운즈’의 첫 악장 연주 이후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본 윌리엄스 ‘종달새의 비상’, 베토벤 ‘전원’을 연주한 뒤 마지막 곡으로 두 번째 악장을 들려준다. 최 작곡가의 곡이 ‘에코 앤드 에코’ 공연의 처음과 끝을 ‘수제천 리사운즈’가 장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2악장 역시 ‘전원’ 교향곡에서 실마리를 잡아 곡을 썼다는 설명이다.
최 작곡가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베토벤 전원 교향곡의 맨 마지막 부분에 저음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한다”며 “곡은 호른으로 매우 평화롭게 끝나는데 끝 부분에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어둡고 빠르게 연주해 앞 부분 연주에서의 폭풍우를 연상케 한다. 베토벤이 뭔가 할 말을 남겨놓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실마리로 잡고 2악장의 불안하고 어두운 부분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공연의 지휘를 맡은 정치용은 “‘수제천’을 오케스트라로 선보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소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연주하고 보니 웅장하고 볼륨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첫 악장이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흐름이 간간이 흐트러지고 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지휘자 정치용(오른쪽)과 작곡가 최우정[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2악장에선 평화로운 자연을 살아가던 인류의 삶에 균열을 내듯 팀파니 소리와 트럼펫의 굉음이 도드라진다. 최 작곡가는 “음악이 끝날 때 희망적이고 평화롭게 들리기보다 경고성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말러처럼 트럼펫을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곡을 통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선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환경 문제’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최 작곡가는 “환경이 파괴되고 생명이 위협받ㄴ는 지금, 이 음악은 단지 전통음악으로의 가치를 넘어 위에게 도달한 강력한 메시지”라며 “국공립단체가 해외에서 하는 공연을 보면 ‘우리는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제는 나라의 위상에 맞게 세계를 움직이는 지식인, 권력자, 정치인과 치열하게 논쟁하고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