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사태가 적응기로 돌입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개원가로 떠났고, 병원들은 간호사 채용을 시작하면서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한 의사가 복도를 지나고 있는 모습.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의료 공백’ 사태가 적응기로 돌입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개원가로 떠났고, 병원들은 간호사 채용을 시작하면서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정부는 최대 위기로 꼽혔던 추석 연휴가 지나자, 의료계를 향한 대화 참여 호소를 멈춘 상황이다.
2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들은 병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개원가 등으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1만463명 중 3114명(29.8%)은 동네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해서 일하고 있다.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한 전공의는 지난달 19일 1144명에서 이달 19일 3114명으로 한 달 만에 2.7배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충청권 종합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는 “주변 전공의 상당수는 수련을 포기했고, 각자도생에 나선 상황”이라며 “이미 정부와의 신뢰는 무너졌다. 필수과 등 배후과에 신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전공의들의 마음이 돌아설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형병원들은 앞다퉈 간호사 채용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신규 간호사 채용공고를 내고 원서접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150명, 삼성서울병원은 100명 이상의 간호사를 충원할 계획이다.
서울아산병원도 오는 27일 신규 간호사 채용공고를 게재하고 인원을 충원할 예정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이번 하반기에 신규 간호사를 뽑기로 확정하고 구체적인 인원 규모와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고려대 구로·안암병원, 건국대병원, 이대목동병원도 올해 신규 간호사 채용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경증환자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 |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의 일부 업무를 진료지원(PA) 간호사로 대체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빅5 병원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외래 진료와 수술이 올 초 대비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에 간호사 채용을 재개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전공의 공백을 PA 간호사로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필수·지방 의료 공백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성명서를 통해 “필수·지방 의료의 붕괴가 전공의 및 의대생 이탈로 가속화됐고 이제 교수진마저 병원을 떠나면서 벼랑 끝에 몰려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최대 위기로 꼽혔던 추석 연휴가 지나자 한숨 돌린 모습을 보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2025년도 입학 정원은 이미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됐기 때문에 변경이 어렵다”며 “2026년은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계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 제로베이스에서 검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대안에 대해서는 “정부는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를 발표했는데, 이게 비과학적이고 근거가 미약하다고 말씀하시니 의료계에서 생각하는 과학적이고 근거가 있는 정원은 얼마인지를 여쭤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