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핵 교리 개정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사용 원칙을 담은 핵 교리(독트린) 개정을 공식 선언했다. 비(非)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지원국 역시 공격자로 간주한다는 내용 등이 개정된 교리에 담길 예정이다.
서방국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할 경우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AP·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국가안보회의에서 “현재 군사·정치 상황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며 “핵 억제 분야 정책은 현실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조건을 다루는 교리 변경 작업이 진행돼 왔고 군사적 위협에 관한 내용이 보강돼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핵 교리 개정을 선언하고 실무적 주문을 내린 셈이다.
러시아의 핵 교리는 적의 핵 공격이나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 무기 공격을 받을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미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을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대응 방안으로 핵 교리를 개정할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위협의 발생’을 핵 교리 개정 사항으로 꼽았다. 어떤 위협이 생기면 핵무기 사용이 가능한지를 다루는 조항을 고쳐 최근의 안보 환경 변화를 반영하라는 취지다.
그는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 이를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보유국이 재래식 무기를 쓰더라도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공격이라면 이 국가들을 모두 공격자로 여기겠다고 푸틴 대통령은 설명했다.
아울러 전투기와 순항 미사일, 드론 등을 활용해 공중 및 우주에서 러시아 국경 안으로 대규모 공격을 개시한다는 점이 신뢰할 만한 정보로 감지되면 핵무기 사용이 고려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핵 교리 개정 방향은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를 공습한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에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검토 중이고, 러시아는 서방 무기가 자국을 타격할 땐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따라서 러시아의 개정 핵 교리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핵보유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재래식 무기인 장거리 미사일 등을 러시아 본토 타격에 쓸 경우,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간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본토를 타격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지원국인 서방국들까지 공격자로 간주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을 핵 교리 변경에 담겠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핵 교리 개정 사항에 자국에 대한 위협뿐 아니라 맹방인 벨라루스에 대한 공격도 핵무기 대응을 고려할 요건으로 넣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변경할 교리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면 핵무기 사용 권리를 가진다는 뜻도 담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