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바이드노믹스?”…해리스 경제공약 살펴보니 [디브리핑]

25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필립 초스키 극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이 한달여 남은 가운데 25일(현지시간) 경제 공약을 공개했다. 1억명 이상의 중산층에 세금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등 중산층을 위한 대대적인 혜택이 주요 내용으로, 관세 부과와 법인세 인하를 통해 경제 부흥을 시도한다는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큰 틀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부 주도의 경제 부흥정책에서 조금 더 진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경제클럽’에서 행한 경제정책 연설에서 자신의 주요 경제 공약 슬로건인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의 일환으로 미국 경제에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약속하고 제조업과 중산층 기회를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후보가 내놓은 제조업 공약의 핵심은 ▷첨단 기술과 전략 산업 투자 ▷제조업 일자리 보호 기업 지원 ▷중국 등 경쟁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 등이다.

그는 “강력한 중산층 형성을 내 대통령직을 결정짓는 목표이자 집권의 이유로 삼을 것임을 맹세한다”며 집권시 중산층을 위한 감세 등 대대적인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기회 경제’를 지탱하는 첫 번째 기둥으로 ‘생활비 줄이기’를 제시하면서 1억명 이상의 중산층이 세금 우대 혜택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만 1세가 될 때까지 6000달러(약 799만원)의 양육 비용을 지원하고, 영유아 및 노인 돌봄 비용과 간병 비용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또 중산층을 위한 300만채의 새 주택 건설 및 임대를 위해 부동산 개발업자 및 건설업자들과 협력할 것이며, 첫 주택 구입자에게 계약금 용도로 2만5000달러(약 3300만원)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식료품 가격 ‘바가지’를 막는 사상 첫 연방 차원의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공약했다.

‘기회 경제’ 두 번째 기둥으로 ‘혁신산업 육성’을 꼽았다. 해리스 부통령은 스타트업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현행 5000달러에서 5만달러(약 6700만원)까지 10배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원을 통해 첫 임기 내 소규모 사업체 창업 신청 건수가 2500만개에 도달하도록 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기회 경제’ 세 번째 기둥으로 ‘미래산업 선도’를 거론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항공우주, 양자 컴퓨팅, 블록체인, 청정에너지 등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 미국이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해리스 부통령이 제시한 경제공약은 지난 달 중순 제시했던 경제 정책을 구체화한 것으로 바이드노믹스(바이든+이코노믹스)의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중산층과 기업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노조 권한을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둔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공약보다 진전을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어니 테데스키 전 바이든 행정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해리스 부통령은 여러 면에서 바이드노믹스의 진화판”이라며 “‘중산층 자본주의(middle-class capitalism)’라고도 요약할 수 있다”고 평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 공약은 수년간 경제의 주요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재정 등을 활용해오던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연설 장소로 과거 철강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피츠버그를 택한 해리스 부통령은 철강과 강철 제조업 투자 확대를 위한 세액공제 혜택 확대안도 꺼내 들었다. 대선 향배를 가를 ‘러스트벨트(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 지역의 유권자 표를 의식한 공약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제조업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국가 안보에 관련 있는 분야로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8.1%에 불과하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하루 전날인 24일 경합주인 조지아주의 서배너에서 연설을 통해 제조업 친화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거듭 강조했다.

해외에서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을 위해 세제·규제를 완화한 특구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해외로 유출된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연구개발(R&D) 세제를 확대해 설비 투자 비용을 첫해에 100% 공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주요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제조업 담당 대사’도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트럼프 감세안’에 따라 현재 21%로 낮아진 법인세를 추가로 15%까지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언급한 뒤 “이것은 내 제조업 르네상스 계획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두 후보 모두 제조업 강화를 강조한 것과 관련해 로버트 바베라 존스홉킨스대 금융경제학 센터장은 “제조업 일자리를 강조해 온 것은 한때 미국 산업에서 제조업이 고임금 일자리였던 만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인디애나 볼주립대학의 마이클 힉스 경제학 교수도 첨단 기술 공장의 경우 고도로 자동화돼 있기에 제조업 육성책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컴퓨터 반도체 등 품목을 목표로 할 때는 유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힉스 교수는 “초소형 전자 공학 기술처럼 국가 안보와 관련 있는 분야에 대한 혜택을 주는 것이 이점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 대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경제클럽’에서 행한 경제정책에서 연설하는 모습. [AFP]

두 후보의 경제공약이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누가 되든 미국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WSJ은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 중 ‘미국 혁신과 산업 역량 투자’에서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약 133조 원)의 세액공제 혜택이 들 것이라고 했다. 또 미 의회가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 협정을 시행할 경우 미국 기업의 해외 수익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짚었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세는 매출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다국적기업의 자회사가 특정 국가에서 최저한세인 15%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으면 그 차액을 모기업 소재국에 납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리스 부통령은 법인세율을 현 21%에서 28%로 인상하고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해외 수익에 대해 납부하는 세율을 현재(10.5%)의 두 배인 21%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방영된 MSNBC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법인세를 높여야 한다”며 “초대형 기업들과 억만장자들이 자기 몫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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