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 [연합[ |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2026년 이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는 한미 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미국 대선을 한 달여 앞둔 4일 전격 타결됐다. 한국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 등 변수를 고려해, 비교적 신속하게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美 대선 앞두고 방위비 협상 ‘속결’… 8.3% 인상= 한미는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협상 개시 6개월 만인 제8차 회의에서 최종 타결했다고 외교부가 4일 밝혔다. 첫해인 2026년 한국이 부담하는 분담금은 2025년 대비 8.3% 오른 1조5192억원이다. 이후 연간 인상률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하기로 합의했다. 현재는 국방비 증가율과 연동하고 있어 한국 측 부담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12차 SMA는 2026∼2030년 5년간 적용된다. 첫해인 2026년 분담금은 2025년 분담금(1조4028억원)보다 8.3% 증액된 1조5192억원으로 결정됐다.
외교부는 “2026년 총액은 최근 5년간 연평균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증원 소요, 군사건설 분야에서 우리 국방부가 사용하는 건설관리 비용 증액으로 인한 상승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측은 연간 증가율로 현행 국방비 증가율(평균 4.3%) 대신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사용키로 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전망에 따르면 올해와 2025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은 2%대다. 여기에 예상 밖 상황을 대비해 연간 증가율이 5%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도 설정했다. 이는 11차 협정 타결 당시 방위비 분담금에 국방비 증가율이 연동되면서 한국 측 부담이 커졌다는 국회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외교부는 분담금 규모 상승률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급격한 증가도 방지했다고 자평했다.
이에 따라 CPI 증가율 2%를 가정하면 내후년 1조5천192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300억∼320억여원이 올라 2030년에는 총액이 1조6444억원이 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제10차(2019년) 때는 줄다리기 끝에 8.2%가 올랐으나 적용 기간이 1년으로 불안정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1차 때도 장기간 교착 상태를 겪다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1년 적용 기간 6년 및 13.9% 증액에 합의했으며, 이후 국방비 증가율이 적용돼 매년 3.4∼5.4%씩 총액이 늘었다.
이밖에 양측은 분담금 운영 효율성·투명성·책임성을 높이고자 ▷합동협조단(JCG) 협의 강화 ▷군수지원 분야 5개년 사업계획 제출 요건 신설 ▷한국 국방부 건설관리비 3%→5.1% 증액으로 역할 강화 ▷제도개선합동실무단(IJWG)에서 한국인 근로자 퇴직연금 운용 수수료 협의에도 합의했다.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의 한미 양측 수석대표인 이태우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오른쪽)와 린다 스펙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 [연합] |
▶트럼프 당선되면 ‘재협상’ 가능성= 한미 양국은 동맹의 대폭적인 방위비 부담을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 등에 대비해 이전보다 협상을 서둘러 시작했고 속전속결로 진행해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할 경우 이번에 타결된 SMA를 그대로 두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날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SMA의 조기 갱신은 동맹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지만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동맹을 보호할 수 있는 트럼프 방어장치(Trump-proof)는 없다”면서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이기면 협정 조건을 재협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USIP) 선임연구원도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정,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SMA도 철회할 수 있다”면서 “또 군사 훈련과 미국 자산의 한반도 배치 등에 대해 한국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었던 2019년 동맹국 등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한국에 기존의 6배 수준인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별다른 근거 없이 요구한 50억 달러는 한미가 이번에 합의한 2026년 분담금 규모(1조5192억원·약 11억2600만달러)보다도 훨씬 큰 액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백악관 회의 중에 “50억 달러 합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거기(한국)에서 나오라”고 말하는 등 방위비 인상 문제를 주한미군 주둔과 사실상 연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한 옵션을 보고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초강경 입장 때문에 한미 양국은 트럼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새 SMA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협정 공백 상태가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