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거대 플랫폼의 저주

지난 2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글로벌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영화 ‘전,란’이 개막작으로 상영된 것. 극장 상영 영화가 아닌, 안방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볼 수 있는 OTT 영화가 국내 최대 영화제의 얼굴이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OTT들도 올 하반기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영화제 초반을 뜨겁게 달궜다.

BIFF의 이러한 시도는 사실 예상치 못한 ‘파격’이라고 보긴 힘들다. 베를린, 베니스와 같은 세계 3대 영화제들이 이미 2~3년 전부터 OTT 영화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이 BIFF의 선택을 두고 설왕설레하는 것은, 늘 실험적인 작품을 개막작으로 고수해왔던 BIFF가 초청작이 아닌 개막작을 OTT 작품으로 선택한 탓이리라. 이는 국내 영화제 마저도 ‘극장’이라는 플랫폼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의 강력한 영향력은 영화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드라마, 예능 등 다른 K-콘텐츠에도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자신들의 플랫폼 속으로 흡수했다. 덕분에 콘텐츠 제작자들은 기존 미디어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고, K-콘텐츠에 대한 해외 시청자들의 접근성이 용이해졌다. 이에 K-컬처는 미국 할리우드 등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며 주류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글로벌 OTT의 공습 역시 K-콘텐츠에 좋은 영향만 미치진 않았다. 우수한 창작자들이 글로벌 OTT에만 몰리면서 극장이나 TV 등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여기에 글로벌 수준으로 높아진 배우 및 감독들의 몸값은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져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 제작 축소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창작자들 역시 글로벌 OTT의 투자를 받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자극적인 소재를 위주로 제작할 수 밖에 없어 예전만큼 창작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워졌다.

문제는 이런 과정들로 인해 K-콘텐츠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OTT가 투자하는 대작 위주로 제작되다 보니 콘텐츠의 다양성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또 대규모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자 이미 유명해진 감독이나 배우들만 섭외가 몰리면서 신인 감독이나 배우들에겐 기회조차 없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업계에 새로운 인재들의 유입을 방해해 제작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경쟁력이 떨어진 다른 플랫폼들이 하나씩 무너진다면 수 년 뒤에는 사람들의 시청권 역시 제한받을 수 밖에 없다.

K-콘텐츠가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몇 년 안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방구석 콘텐츠’가 각광을 받는 사이 미국 할리우드의 파업으로 글로벌 주류 콘텐츠 제작이 수 개월 이상 주춤하자 K-콘텐츠가 대안이 되면서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듯, 특정 플랫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부작용을 나을 수 밖에 없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격언은 증시에서만 통하는 금언은 아니다.

신소연 헤럴드경제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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