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로 인한 서민 삶의 무거움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1968년 8월 21일 소련 주도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첫날, 프라하 시민들이 프라하 중심가의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건물 앞에서 소련 탱크를 포위하고 있다. [로이터]

삶은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무거운 것일까? 왕관을 쓴 자는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데 왜 밀란 쿤테라는 인간 삶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표현했을까? 그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가벼운 그림자 같은 것으로 본 것일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혹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해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면 너무 허탈하지 않나. 그런 허무함이 우리 인생에 몰려온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변을 보면 각자의 삶은 무게가 달라 보인다. 진중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쉽게 사는 이도 있다.

누구는 무거운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격의 차이일까? 우리는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현재 잘 살고 있다 해도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내린 후에 힘들다고 하자. 만약 다른 선택이 더 좋지 않은 삶으로 이어졌다면 어떤 느낌일까. 만족하지 않은 결정이라도 잘 내린 결정이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기에 의사결정의 타당성에 대해 객관적인 정답은 없다고 하겠다. 인간 존재가 갖고 있는 이런 현상을 밀란 쿤데라는 문학적으로 깃털처럼 가볍다고 했다. 우리 인간은 삶의 버거움으로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때가 많은 데도 말이다. 인간의 삶은 갈수록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과장일까. 물질 만능이 팽배하는 현대에 젊은이들의 삶은 더욱 벅차 보인다.

보헤미아의 작은 술집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던 젊은 테레자는 출장으로 이 마을을 들른 외과의사 토마시를 우연히 만난다. 전처와의 이혼 이후 진지한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던 토마시는 강물에 떠내려 온 아기 같은 테레자의 연약한 매력에 빠진다. 고아를 떠맡듯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에로틱한 우정이라고 이름 붙인 가벼운 삶을 토마시는 버리지 못한다. 육체와 영혼, 즉 섹스와 사랑은 별개라는 게 토마시의 생각이다.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는 여성 편력이 있는 토마시는 일회성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반면 테레자는 우연 사이를 헤쳐 나가며 ‘무거운 운명’을 만들어 간다.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토마시를 지켜보는 테레자는 질투와 체념은 그녀를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든다. 테레자에게 육체와 영혼, 섹스와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는 자유를 잃는다. 두 사람은 함께 스위스 취리히로 넘어간다. 체코를 벗어나면 토마시의 연인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테레자는 토마시의 끊임없는 외도에 믿음을 잃고 만다. 그녀는 홀로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린다. 질투와 미움이 뒤섞인 두 사람의 삶은 슬픔과 고독으로 무게를 더해 간다. 토마시는 그녀를 찾아 프라하로 돌아가고 둘은 어느 날 우연히 트럭 사고로 죽는다. 우연은 그토록 가벼운 건가!

한편 토마시의 또 다른 연인이자 화가인 사비나는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국가와 역사가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한마디로 그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자유영혼이다. 싸구려 배우와 결혼했던 사비나는 체코에서 멀리 떠난다. 사비나를 사랑하는 학자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안정된 일상을 누리던 프란츠는 그런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된다. 안타깝게도 사비나는 프란츠를 가벼운 친구로 생각해 그들의 사랑은 엇갈린다. 프란츠는 아내가 아닌 사비나에게서 여자라는 의미를 느끼니 참 슬프다. 프란츠는 아내에게 사비나의 관계를 말하지만, 사비나는 프란츠와 이별을 고한다. 프라하 사태를 마주하고 사비나는 우울증을 앓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녀는 존재의 모순을 잘 보이는 가벼운 인물이다. 프란츠는 캄보디아로 가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다. 가벼운 사비나와 토마시, 무거운 테레자와 프란츠가 짝이 되었다면 훨씬 잘 살았을까 궁금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프란츠처럼 삶의 권태기를 맞기 쉽고 토마시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도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행복은 어쩌면 고통을 줄이고, 피하고 견디는 것에 있지 않을까. 성공, 부, 명예 보다 세상의 고뇌를 어떻게 지혜롭게 바라보는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불확실한 정치 상황 속의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소설은 불확실성에 놓인 인간의 허무한 행동과 권태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다. 경제가 삶을 지배하는 주요 원인인 상황에서 경제적 무게는 서민을 억누른다.

지난달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0.5% 포인트를 내린 빅컷이었다.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갈 것일까? 경기 침체 우려보다 인플레이션 부담 지속과 연준의 더딘 금리 인하에 따른 고금리 스트레스가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 우리는 향후 펼쳐질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불안에 떠는 존재로 살고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 물질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물질을 획득했는지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 게 우리 삶의 보편화가 된 지도 오래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높을수록 현실이 그렇지 못할 때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소설 속 테레자처럼 자존감은 낮고 우울 증세가 높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무거운 삶을 살 가능성이 많아질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불행히도 인간의 운명은 단 한번 살기에 삶의 결정이 옳았는지를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면서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되고자 노력해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의 의사결정이 올바른지에 대해 주관적 타당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 때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공이 된다.

현대인이 사는 삶은 굉장히 무겁고 경쟁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복잡하다. 다른 이의 티보다는 옥을 보려는 노력, 말하자면 사람 공부를 깊게 해야 권태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100세 이상의 생애주기에서 이제 과거 사람을 대하는 권위주위 방식은 인간의 삶에 우울과 권태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개인의 역량과 생존을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삶을 추구하는 게 100세 시대에 더 적합하다. 소유와 탐욕의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는 이 세상에 올바른 모습으로 서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현대인이 소유의 문법을 뛰어넘어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을 때 삶에서 덜 헤매게 되지 않을까 한다.

불확실한 시대에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아래 마음의 병을 가질 수 있어 치유해야 한다.

첫째, 상실감과 소외감(FOMO)의 극복이다. 무언가를 놓쳤을 때 괜히 불안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상실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이렇게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 한다. 소설 속 네 명의 주인공은 가벼움과 무거움속에 방황하며 삶에서 상실과 소외로 가슴 아파 한다.

둘째, 포보(FOBO, Fear of a Better Option)는 최선의 선택지를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두려움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한번뿐인 인생에서 번민을 하다 제대로 된 결정을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도달한다. 때로는 인생의 선택지를 압축하고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을 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사람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두려움(FOPO, Fear of people‘s opinions)’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여러 상황에서 겪는 자존감 하락으로 고민이 넘칠 때도 있다. 의견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에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낀다. 무거운 테레자가 가벼운 토마시에게 느꼈을 아픔이 물밀처럼 다가온다. FOPO를 지나치게 느낄 때는 성찰과 자각을 통해 감정을 보듬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소설 속 삶의 악보란 표현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악보를 그리며 살고 있다.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무거운 것은 무거운 대로 그 의미가 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삶이 무겁든, 가볍든 우리는 진솔한 사랑을 생각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소설 속 명대사가 귓전을 울린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이 아쉬운 시대다.

밀란 쿤데라(1929.4~2023.7)는 체코 태생 소설가다. 체코가 소련군에 점령당한 후 시민권을 박탈당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는 1975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했다. 1981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후 2019년에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했다. 사실 그는 오랜 기간 체코 국적 회복을 거부해 왔다. 마침내 2018년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가 직접 그를 방문하고 설득 끝에 국적을 회복했다.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개봉했다. 대표 작품으로 농담(1967), 우스운 사랑들(1968), 이별의 왈츠(1972), 삶은 다른 곳에(1973), 웃음과 망각의 책 (197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불멸(199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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