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강승연·서지연 기자] 티몬·위메프(티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계열사의 재무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의 발언이 거짓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이메일이 공개됐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진행된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구 회장이 큐텐 계열사 임원들에게 보낸 이메일들을 공개했다.
앞서 구 회장은 큐텐 자회사인 큐텐테크놀로지를 통해 그룹 전체의 재무·회계를 컨트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7월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 나와 “실질적인 지배를 한다고 해서 돈을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책임을 부인한 바 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이메일은 2022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구 회장이 직접 발송한 것과 구 회장의 최측근이자 그룹의 자금 흐름을 관리한 이시준 큐텐 재무본부장이 올해 3월 작성한 것으로, 모두 구 회장의 주장과 대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류광진 티몬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2일 류화현 위메프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에게 발송한 이메일에서 “6월 상품권 판매액의 리미트(한도): 티몬 1900억원, 위메프 700억원”, “판매자별 월 정산액이 월 판매액을 넘지 않는다”, “판매중단 셀러의 경우 정산금의 일부를 보류해야 한다” 등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내렸다.
또 지난해 8월 류광진 대표와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 등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서는 핵심 GMV(총매출) 목표를 전달했다. 9~11월 기간 중 월별 ▷T프라임 ▷큐텐 해외직구 ▷파워딜 등 서비스를 통한 매출 목표금액을 100억~300억원 등 세세하게 제시해놨다.
티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 직전 대대적으로 진행된 프로모션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구 회장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메일도 공개됐다.
구 회장이 지난해 12월 작성한 이메일에는 “사업부서 담당은 최대 10%, 운영/마케팅 부서의 지정된 ID만 20%까지 쿠폰/할인을 예산범위 내에서만 설정하라”는 등 프로모션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시내용이 담겼다.
류광진 티몬 대표가 올 6월 한 임원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에는 “6월 T프라임 실적이 부족한 상황인데, 구 회장이 이 부분 강하게 질책하고 노발대발하셨다”, “반드시 TWI프라임 100만건 가야한다고 강조 언급하셨다”는 등 구 회장이 티메프 프로모션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시사하는 문장이 확인됐다.
글로벌 온라인쇼핑몰인 ‘위시’ 인수대금에 티메프 미정산금이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발견됐다.
이시준 본부장은 올 3월 류광진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위시 인수자금 마련 계획이 더 세밀화돼야 한다”며 3~4월 GMV 예측치와 4월 10일까지 상품권 판매 가능 최대금액을 확인할 것을 요청했다.
인수자금 2300억원 중 현금으로 지급된 4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티메프 판매대금을 끌어썼을 것이란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7월 긴급 현안질의 때) 구 회장에게 돈(미정산대금)이 어딘가에 있을 거고, 아는 바 있냐고 물었는데 관여한 바가 없다고 했다. 실질적 지배한다고 해서 돈을 관리하는 건 아니라고 했었다”면서 “이런 이메일은 실질적으로 구 회장이 (재무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진행된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
또한 “피해 사태가 굉장히 큰 상황이고 청문회가 진행된 이후에도 금감원이 이렇다 할 구체적인 자료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로 모든 것이 넘어가고 영장까지 기각됐다”며 “피해자들은 그냥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금 운용이나 유용, 의사결정 과정에 본인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구 회장의 진술 중 최소한 일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세세한 이메일 내용까지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통탄스럽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에 입법안(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조금 더 강력한 감독권과 시정권한을 갖게 되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챙겨 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