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의식” vs “사회적 책임”…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복판서 명분 누가 챙기나 [투자360]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노아름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양측 모두 시장을 설득하기 위한 ‘프레임 경쟁’이 한창이다.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키워드를 쥔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다소 추진력이 사라졌지만, 지난 공개매수에서 확보해 둔 5.3%의 지분율 덕택에 추후 예상되는 지분율 확보 다툼에서 앞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최윤범 회장 등 고려아연·베인캐피탈 연합은 자사주 매입 법적 리스크를 해소하며 예정대로 오는 23일까지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한다. 마감일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에는 서울 중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하며, 시장에 줄 메시지를 마지막 점검하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종가(82만4000원)보다 6.43% 오른 87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오전 11시 가처분 결과 발표를 전후해 고려아연 주가가 급등한 결과다. 장 초반 7% 하락한 주당 76만원에 거래되던 고려아연 주식은 법원 기각결정 이후 급등세로 돌아섰다.

다만 주가 변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고려아연 물량(약 18%)을 감안하면 고려아연이 목표 매수량 20%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자사주 취득 후 소각 예정인 점을 감안해 고려아연·베인캐피탈 연합의 지분율은 MBK·영풍 지분율을 밑돌 가능성이 상당하다. 때문에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측은 기존 주주들을 폭넓게 접촉하거나 우호세력 결집을 요청해 경영권 방어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공방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자사주 소각 ▷장내 지분매집 ▷임시 주주총회 소집 등 양측은 각각 중요한 변곡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명분과 정당성을 얻기 위한 논리 다툼이 한창이다. 이는 주주를 설득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 일환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시세차익 이외에도 세간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등 기관 주주들은 시장이 주목하는 경영권 분쟁 한복판에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때문에 명분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메시지 전달이 공방을 거듭할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앞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지만 MBK·영풍 측은 향후 본안소송에서 손해배상소송, 배임 등에 대한 시비를 더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MBK 측은“신속한 결정을 요했던 가처분의 경우와는 달리 향후 본안소송 단계에서는 저희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기주식 공개매수의 문제점과 위법성을 명백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MBK 측은 “이는 고려아연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대주주로서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구성원으로서 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는데 일조하고자 한다는 소명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MBK·영풍 측이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사이 고려아연은 시세조정 의혹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MBK가 스튜어드십코드에 미가입했으며, 영풍은 중대재해 예방 및 환경오염 개선 노력이 취약했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MBK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이 결탁해 고려아연을 경영하는 것을 막아내는 게 고려아연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게 이번 가처분 기각의 의미”라고 밝혔다.

또한 고려아연은 상대 세력이 정당성을 확보했는지 여부를 도마 위에 올려 양측의 법정 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고려아연은 가처분 신청 기각 이후 입장을 내고 “영풍·MBK 연합의 시장 교란 의도가 입증됐다”며 “사기적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 금융감독원 진정을 포함해 민형사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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