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생산시설 |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사실상 최첨단 기술 투자 전면 통제에 나서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의 자국 중심 정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도 적잖은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다시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하면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보조금 지급을 믿고 이미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TSMC,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들은 갈수록 심화하는 불확실성에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2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팟캐스트에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미국에 와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며 대규모 보조금을 주는 대신 관세로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초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앞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지원하는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에 따라 인텔은 85억달러, TSMC는 66억달러를 지급받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00억달러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두 개를 짓는 대가로 지난 4월 64억달러의 보조금을 약속받았다. 인디애나주에 첫 미국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한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000만달러의 보조금을 확보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엔 관세 부과로) 단 10센트도 내놓지 않아도 됐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장을 짓도록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며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연일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한 기업들이다.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고 그게 지금 대만에 있다”고 주장하며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TSMC를 향해 또 다시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그들(대만)은 우리의 보호를 받길 원하지만 보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리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대만이) 가져갔다”면서 “(미국은)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다. 대만은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만을 겨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곧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TSMC를 향한 직격탄으로 해석되면서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견제 수위가 높아지자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지난 26일 대만 신주현에서 열린 TSMC 연례 체육대회에 참석해 “반도체 자유무역은 죽었다. TSMC에게 힘든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TSMC뿐만 아니라 미국 투자를 결정하고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취임 직후부터 관세를 중심으로 통상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며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