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정읍시장.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학수 전북 정읍시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결을 뒤집었다. 이로써 이 시장은 직위 상실 위기를 피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김상환)는 31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이 시장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깼다.
선출직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의 유죄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다시 판단하도록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이 시장은 2022년 5월께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대 후보였던 무소속 김민영 후보에 대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허위로 제기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 시장은 라디오와 TV토론회 등에서 "(김 후보는) 산림조합장 재직 당시 구절초 공원 인근에 16만7000㎡의 땅을 샀다. 군데군데 알박기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 시장은 해당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와 카드뉴스도 언론인 등 다수에게 배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며 이 시장을 고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시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시장 측은 “해당 발언 및 내용은 허위가 아니다”라며 “일부 내용이 허위사실이라 하더라도, 허위사실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심 법원은 해당 발언이 허위가 맞고, 이 시장이 이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형사부(부장 이영호)는 지난해 7월, 이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부동산 투기 의혹은 허위라며 그 근거로 “김 후보의 토지 상당 부분은 어머니에게 증여받은 것이라 직접 매입한 게 아니다”라며 “알박기로 볼만한 사정이 없고, 토지 인근에 도로 개설 또는 개설 계획 사실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부동산 투기 의혹은 상대 후보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해 검증을 거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이 시장은 선거운동 경험 등에 비춰 확인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현재 소유자와 취득 시기만 봤을 뿐 취득 원인, 경위, 현황, 개발 가능성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양형 이유에 대해선 “이 시장이 김 후보와 2073표 차이로 당선된 만큼 범행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상대 후보와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부터 제보를 받았고, 김 후보의 공직 적격성을 검증하려는 공적 목적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2심을 맡은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 백강진)도 지난해 11월 벌금 1000만원을 택해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시장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노력 없이 제보와 소문에 기초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며 “선거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의혹을 제기했으며 지금도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할 때 1심의 형량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TV토론회 발언과 라디오토론회 발언, 보도자료 내용 등을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 TV토론회 발언에 대해 “전체적인 취지는 상대 후보가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국가정원 승격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며 “알박기 등의 표현은 상대 후보의 국가정원 승격공약의 이해충돌 여지 또는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TV토론회에선 상대 후보가 이를 반박하거나 해명할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다”며 “이 시장이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카드뉴스와 보도자료 부분에 대한 판단도 무죄 취지였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상 ‘투기’라는 표현은 상대 후보의 공약이나 시장직 수행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선거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선거과정에서 상대 후보자의 정책 공약을 비판·검증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의 의미를 세심하게 살핀 뒤 허위사실공표죄의 성립을 부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