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강남 아파트는 영원히 ‘불패’일까 [북적book적]

강남구 도곡동의 1세대 타워형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의 모습[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재벌집 막내아들’로 환생한 송중기(진도준 역)는 할아버지 이성민(진양철 회장 역)에게 사업적 조언을 해주고 그 대가로 분당 땅을 받는다. 송중기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환생러’이기에 훗날 분당 땅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당 보다 더 땅 투자의 잭팟을 기대할 수 있었던 곳은 강남, 즉 옛 경기도 광주군과 시흥군이었다. 한강 이남 미개발 불모지, 서울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그 땅이 오늘날 대한민국 부자들이 모여사는, 서울의 심장이 됐다.

신간 ‘강남의 탄생-대한민국의 심장 도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지난 2016년 초판 발행 이후 변화한 내용과 새로운 정보들을 대폭 반영해 8년 만에 나온 개정 증보판이다. 도시의 변화 주기가 갈수록 짧아져 이제는 10년까지 갈 것도 없고 5년이면 강산이 변하기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년 전에도, 그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강남은 서울의 중심이다.

강남은 코엑스몰, 신세계강남백화점, 가로수길, 압구정과 청담동 거리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번화한 소비 지역이기도 하지만, 사실 거주지로서 의미는 유독 남다르다. 어떤 이에게 ‘어디 살아?’라고 물었을 때 ‘강남 산다’고 답하면, 대답을 듣는 그 순간부터 상대방에게 사뭇 다른 컨텍스트(context·맥락)가 생성된다.

특히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이기 때문에, 강남을 들여다 볼 때 아파트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강남에는 복도식형, 계단실형, 타워형 세 가지의 아파트 유형이 공존한다. 예컨대 잠실주공5단지는 엘리베이터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양쪽으로 복도를 놓은 복도식형, 압구정 현대아파트은 계단실에 엘리베이터를 배치한 계단실형의 대표 주자다. 1997년 이후엔 정부가 정책적으로 초고층 주상복합 및 아파트 건설을 지원하면서 타워형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책 표지.

다른 유형에 비해 겉모습이 화려한 타워형 아파트는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다. 바로 무시무사한 바퀴벌레(코크로치·coakroach)의 출몰이다. 저서에 따르면, ‘성냥갑’ 판상형 아파트에 사는 바퀴벌레는 크기가 손톱만하고 바람이 통할 때는 구석에 숨어있다가 바람이 멎으면 사람을 피해 몰래몰래 활동한다. 반면 타워형 아파트에는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바퀴벌레 워터벅(waterbug)종이 사는데, 이것들은 등짝이 시커멓고 크기가 커서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잡고 또 잡아도 나타나고, 사람에게 다가와 덤비기도 하는 공격적인 놈들이다.

아파트 외에 강남의 또 다른 특징은 ‘성형수술’이라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성형수술 열풍이 강남 부동산 지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신논현역에서 신분당선, 강남역에 이르는 강남대로, 신사동 가로수길, 청담동 청담사거리, 논현동 차병원사거리 등을 중심으로 대형 성형외과 빌딩 신축이 잇따랐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성형외과가 빌딩 일부에 세 들어 있었으나 대형화 바람이 불면서 15~20층 규모의 빌딩을 직접 지어 통째로 사용하거나 빌딩을 매입하는 경우가 늘어 빌딩 거래 시장에서 성형외과가 주요 매수자가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졌다.

성형 산업은 내국인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중국 및 동남아시아의 미용 관광객이 큰 손이 되면서 이들이 묵는 호텔도 성형외과 근처에 여럿 들어서게 됐다. 그 옆으로는 연예기획사들이 포진하며 사실상 ‘한류’가 강남 특정 지역에서 자가발전을 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강남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원류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노원을 ‘강북의 강남’, 목동을 ‘강서의 강남’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하지만 노원을 실패한 강남으로, 목동을 성공한 강남으로 다시 나눈다. 노원구에는 별다른 일자리가 없이 오직 아파트만 지어졌다. 저서에 따르면, 원래 노원구와 도봉구 일대에는 산업 지대가 있었는데 ‘기업들이 돈에 눈이 멀어’ 공장 부지를 일반 주거 용지로 전환하는 바람에 주요 교통 노선인 4호선과 7호선이 사대문 안과 건대입구역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베드타운이 되어버렸다.

반면 목동은 여의도, 상암과 더불어 대한민국 방송의 중심지이고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부유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명문 학교들이 강북 도심에서 옮겨왔고 자연스레 학원이 밀집했으며 각종 공공기관도 들어섰다. 저자들은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 현대백화점도 이곳에 입점했다”고 짚는다.

강남은 서울을 넘어 먼 지방 도시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결과는 사뭇 부정적이다.

“강남의 성공은 우리나라 도시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이고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도 모두 비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교육청, 공기업의 지역본부,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놓았다. 굵직한 대기업의 지사들도 대부분 이전했다. 원도심에는 옮길 수 없는 기차역과 전통시장만 남았다.”

강남의 탄생/ 한종수·강희용·전병옥 지음/ 미지북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