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초고액자산가 WM 서비스 경쟁 나서
상속·가족법인 등 콘셉트 앞세운 특화점포 개설
예술에 관심 많은 자산가 성향 맞춘 서비스도 선봬
지난 8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슈퍼 컬렉터 전’에서 신한프리미어패밀리 오피스 VIP고객이 전문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신한은행 제공] |
[헤럴드경제=정호원·강승연 기자] 신한은행 프리미어패밀리오피스는 지난해 10월 더현대에서 에이치아트가 주최하고 배우 김희선 씨가 콘텐츠 디렉터로 참여한 현대미술 전시 ‘ATO;아름다운 선물 전시회’에 고객 20명을 초청했다. 선착순으로 모집한 행사에 참여한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유명 전시가 열릴 때 VIP 고객을 위한 프리뷰나 폐관 후 대관 행사 등을 마련했을 때 고객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했다.
올해엔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등 명품 브랜드와 협업해 VIP 대상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2024 여름 컬렉션과 한국에 최초 공개된 고객주문제작(MTO) 상품이 소개됐고, 프라이빗 룸에서 1:1 모델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초고액자산가의 마음과 오감을 사로잡기 위해 은행이 특화점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 초고액자산가 수가 증가했고, 은행의 비이자수익 증대 전략 기조가 맞물려서다. PB센터별로 전통적인 자산 관리뿐만 아니라 가업승계 노하우 전수, 소규모 문화 살롱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은행이 자산관리(WM)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배경에는 ‘타깃’인 고액자산가 인구 증가 추세가 자리 잡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부동산 자산이 모두 10억원 이상인 ‘부자’는 45만6000명으로 이는 전체 인구의 0.89%에 해당한다. 2021년 39만3000명, 2022년 42만4000명에서 최근 3년간 약 16%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대출 확대를 통한 은행의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비이자이익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WM 서비스 강화 전략이 힘을 받고 있다.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3분기 누적 비이자이익은 9조9698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9조2153억원) 대비 8.2%(7545억원) 늘어났다. 수수료이익도 8조964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7조3923억원) 대비 10%(7041억원) 상승폭을 보였다. 반면 이자이익은 31조2078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30조3545억원)에 비해 3%(8529억원) 증가에 그쳤다.
또 WM 서비스는 은행, 증권 등 그룹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어 WM 특화점포가 확장되는 추세다. 특히 상속, 가족 법인 등 차별화된 콘셉트를 내세운 점포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달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 더 넥스트’를 출범하고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금융센터에 ‘하나 더 넥스트 라운지 1호점’을 개설했다. 은퇴 준비 및 자산 승계를 고려하는 시니어 고객을 위한 상속 플랜 설계와 유산 정리 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면서 유언대용신탁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가족법인 설립이 대세”…상속, 가업승계 등 노하우 전수
신한은행이 지난 7월 새롭게 문을 연 신한 프리미어 PWM여의도센터의 전경. 정호원 기자. |
초고액자산가는 절세를 위해 ‘가족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가족 법인을 겨냥한 WM 특화점포도 있다. 가족법인이란 법인의 주주가 가족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신한은행은 가족법인을 설립한 중견기업 오너들을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PB)과 투자금융(IB)을 결헙한 PIB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올해 7월에는 여의도에 신한프리미어PWM센터를 새롭게 열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여의도를 기반으로 한 신한금융그룹 IB 파트 및 프라이빗에쿼티(PE), 부동산자산운용사 등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다.
김지영 신한 프리미어 PWM여의도센터 PIB팀 지점장은 “올해는 가족법인 설립이 대유행한 해”라면서 “기존 은행 IB가 담당하던 업무를 자산관리 차원으로 확장해 맞춤형 IB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PIB서비스의 특장점으로 김 지점장은 “사실상 초고액자산가는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다가도 엑시트(exit), 기업공개(IPO)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법인에서 개인으로 자산이 자연스레 이동하는 흐름을 보인다”면서 “개인자산관리와 기업금융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포착해서 고객과 사업체에 생애주기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4월부터 ‘신한 Next Leaders Program(차세대 리더 프로그램)’을 선보여 초고액자산가 2의 네트워킹과 멘토링 지원에도 나섰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경영전략, 승계, 세무, 리더십 등 전문가 초청 강연과 와인, 예술 등 교양 수업을 받을 뿐만 아니라 회원 간 네트워킹에도 참여할 수 있다.
우리은행이 초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선보인 ‘투체어스W도곡’ 로비 전경. 정호원 기자. |
우리은행도 전통적인 기업금융(CB) 강자로서의 노하우를 IB 부문과 PB부문에 접목시킨다는 이른바 ‘PCIB’모델을 선보였다. 지난 10월에 새롭게 문을 연 투체어스W도곡의 김유선 PB지점장은 “복합센터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11월부터 RM지점장 3명이 합류해 기업 자산관리 부문을 담당할 예정”이라면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초고액자산가의 경우 사옥 구매를 희망하는 등 기업여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지점장은 초고액자산가의 가업승계 지원에 대해서 “기업의 주식 이전 등은 회계사와 세무사가 담당하지만, 어떻게 2세에게 조직장악력을 물려줄 것인가는 PB가 지원할 수 있다”면서 “PB와 RM이 그간 가업승계를 지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승계 절차 등을 조언한다”고 했다.
초고액자산가 ‘예술’에 높은 관심 보여…맞춤 서비스 제공도
PB는 입을 모아 “초고액자산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산관리를 해주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슈퍼리치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있는지를 파악해 다양한 문화생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예술’이다. ‘아트뱅크’를 표방한 하나은행은 VIP고객을 위한 수장고 보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미술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미술품 관련 세금 및 상속 등의 자문서비스를 비롯해 미술 시장 동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하나클럽1 PB센터를 거점으로 아트 공간을 운영하면서 미술품 신탁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 KB국민은행은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 고객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체험형 클래스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명품 플라워 브랜드 ‘런던제인패커’ 출신 플로리스트 김수연 대표가 직접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제공] |
우리은행도 TCE본점에서 ‘프라이빗 아트페어’를 통해 VIP 고객이 작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은행은 공인칠기 명장과 플로리스트 대표에게 배우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PB센터는 예술품 구매를 희망하는 초고액자산가를 위해 미술품 소유자와 초고액자산가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면서 “예술품에 관심 많은 고객을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