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에 빠져…“24개월 할부로 사더니” 전부 쓰레기통 행 [지구, 뭐래?]

◆ 지구, 뭐래? ◆

공연장 화장실에 버려진 아이돌 앨범들 [엑스(옛 트위터)]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팬싸(인회) 떨어진 슬픔은 24시간이지만 카드 할부는 24개월”

케이팝 팬들은 가슴 깊이 공감한다는 한 엑스(옛 트위터)의 게시물. 음반이 팬싸인회 당첨의 수단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산 음반은 뜯지도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지어는 구매처나 콘서트장 앞에서도 산더미처럼 쌓인 음반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돈은 낭비하는 건 물론, 환경오염까지 일으킨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음반 대량 구매를 부추기는 기형적인 케이팝 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버려진 아이돌 앨범들 [엑스(옛 트위터)]


케이팝포플래닛과 미래소비자행동, 소비자권익포럼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지속가능한 케이팝, 올바른 소비문화 조성을 통한 기후 대응 방안 모색’ 포럼을 열고 “케이팝의 글로벌 위상 생각하면 반환경마케팅이 퍼져나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10~20대 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빚을 내면서까지 수백장 단위 음반 사재기에 열중하고 있다. 카드 내역이나 1일 알바 현장 사진을 공유하는 식이다. 한 엑스(옛 트위터)에서는 “빚만 엄청 늘었다. 쓰리잡까지 했었다”거나 “팬싸인회, 해외 투어를 다니며 카드 빚과 주변에 빌린 돈이 수천만원”이라는 경험담이 나돌았다.

해외 케이팝 팬도 예외는 아니다. 한 인도네시아 팬은 1~3분 길이의 영상통화 팬싸인회에 응모하려 150장에 이르는 음반을 샀다. 음반 한 장 당 가격 1만9000원임을 고려하면 한화 258만원,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으로 하루 8시간씩 10개월하고도 보름치 월급이다. 또다른 유럽팬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반 500장을 구입했다. 여기에 든 돈은 8500달러로 1년 치 집세라고 한다.

공연장 입구에 버려진 아이돌 앨범들 [엑스(옛 트위터)]


팬들이 이처럼 음반을 사들이는 이유, 아이돌과 대화할 수 있는 팬싸인회에 응모하기 위해서다. 구매양에 비례해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탓에 경매하듯이, 경쟁적으로 앨범을 수백 장씩 사게 되는 구조다.

동일한 수록곡이 담긴 음반을 표지만 다르게 여러 종류로 내거나, 무작위로 포토카드를 넣는 방식도 음반 대량 구매를 부추긴다. 기령 지난달 14일 발매된 아이돌 ‘세븐틴’의 음반은 크게 4종류, 세부 버전까지 합하면 총 19종으로 발매됐다.

상술이라는 걸 알지만 팬들은 불매 등의 방식으로 스스로 제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음반 판매량으로 아이돌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커서다. 기획사가 돈을 많이 벌어야 아이돌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앨범 판매량에 기반해 순위 등이 결정되는 구조도 문제다.

[케이팝포플래닛]


팬들 사이에서도 “음반은 쓰레기”로 통한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 CD로 음악을 감상하는 팬은 5.7%에 불과하다.

음악 감상 외의 목적이 큰 탓에 음반이 무더기로 버려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공연장이나 음반 판매처 앞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음반들이 쌓여 있는 식이다. 해외 팬들은 음반을 대신 구입하고 전량 폐기해주는 식의 구매 대행도 횡행하고 있다.

이 음반들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CD는 폴리카보네이트, 앨범은 폴리염화비닐(PVC)이 주요 소재다. 케이팝포플래닛은 CD 한장 만들 때마다 탄소 500그램 배출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김나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인기 여자 아이돌 초동 판매량(발매 첫 주 음반 판매량)의 탄소배출량은 비행기로 지구를 74바퀴 돌 때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공연장 입구에 버려진 아이돌 앨범들 [엑스(옛 트위터)]


이에 대해 업계와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의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폐기물 사안에서 K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며 “환경오염 오해로 음반 시장이 위축된다”고 맞섰다.

환경부도 “폐기물부담금, 재활용분담금 제도 등을 통해 음반 쓰레기를 저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가 밝힌 지난해 음반 등의 폐기물 부담금은 2억2700만원, 재활용분담금은 1억1000만원 수준이다.

팬들은 정부 규제 등이 필요한 때라고 봤다. 한 엑스 이용자는 “기획사나 팬들은 포기할 수 없으니 음반이 짐이 되지 않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며 “환경 파괴는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냐”는 지적했다. 또다른 엑스 이용자도 “무작위와 추첨에 기반한 방식에 규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 공식 차트는 음반 관련 증정품이 두개 이상이고, 음반 개봉 후에 증정품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차트 집계에서 제외한다. 이에 국내 기획사들은 영국 차트를 겨냥하는 경우 무작위 증정품이 없는 전용 음반을 따로 낸다.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의 ‘golden’의 유럽전용버전(EU exclusive version)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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