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100조 시대…메모리 초격차 복원 숙제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후 50년
美수출통제 등 대내외 악재 수두룩
차세대 메모리기술로 재도약 승부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기흥사업장을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6일 반도체 사업 진출 50주년을 맞았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첫 발을 내딛은 이후 반세기를 맞았지만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다.

2004년 30주년 당시에는 화성사업장에서 기념행사를 치렀지만 40주년이었던 2014년에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부재로 공식 기념행사는 생략했다.

올해는 사업 전반에 걸쳐 경쟁력 약화가 지적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반도체 굴기’를 앞세운 중국 기업의 물량공세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욱 심화됐다. 여기에 국내 정세가 탄핵정국으로 돌변하면서 삼성전자가 극복해야 할 대외적 변수도 가중됐다. 이 같은 복합 위기 속에 삼성전자는 최근 정기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기술 경쟁력 회복과 사업 반등 모색에 시동을 걸었다. 이를 통해 지금의 삼성 반도체를 있게 한 메모리 최강자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74년 출발…‘반도체 50년’ 주요 순간=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시작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의 기반을 닦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기흥사업장에서 삼성 반도체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12년 만인 1986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한 이후 1993년 마침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으로 줄곧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운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비메모리)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올해 11월 18일에는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기흥에서 차세대 반도체 R&D단지(NRD-K) 설비반입식을 가졌다. 총 20조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NRD-K는 10만9000㎡(3만3000평) 규모로, 삼성전자의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한 전진 기지로 꼽힌다.

▶매출 100조원 눈앞 불구 위기론 돌파 ‘숙제’=1975년 2억원에 불과했던 삼성 반도체 매출은 1991년 1조원을 달성하며 성공 신화를 써내렸다. 올해 삼성 반도체 사업의 연 매출은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평가 속에 세계 1위 삼성전자는 올해 줄곧 ‘위기론’에 시달렸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특수를 누리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며 추격자 신세가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1위인 대만 TSMC의 압도적인 지배 속에 존재감을 잃으며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4.9%로 지난 2분기보다 2.6%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11.5%에서 9.3%로 2.2%포인트 떨어졌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HBM를 포함해 대중 첨단 반도체 및 장비 수출규제 대상을 확대한 것도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은 HBM보다 기술 난이도가 낮은 범용 메모리 제품을 싸게 쏟아내며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어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꼽힌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지난달 NRD-K 설비반입식 기념사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연구부터 제품 양산에 이르는 선순환 체계 확립으로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삼성전자 반도체 50년의 역사가 시작된 기흥에서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믿을 건 ‘메모리’, 차세대 기술로 재도약 승부수=삼성전자 DS부문 올해 영업이익은 17조~18조원으로 전망된다.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역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7년 삼성전자 반도체는 연간 35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와 비교하면 상당히 침체한 수준이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기둥은 여전히 메모리 사업이다. 이에 최근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AI 시대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로 전통 반도체 강자의 입지를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예고했다.

반도체 사업 수장을 맡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이 총대를 메고 메모리사업부장까지 겸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표이사이자 부문장 직속으로 메모리 사업을 챙기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원장까지 맡아 차세대 R&D 기술까지 꼼꼼히 점검한다. 최근 위기의 원인으로 불거진 D램 기술력 약화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셈이다.

삼성은 메모리 기술력 회복을 위해 자존심도 일부 버렸다. 내년 개발 및 양산 예정인 6세대 제품 HBM4부터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와의 협업 여지도 열어뒀다. 고객사가 원한다면 자사 파운드리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HBM4에서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를 확실하게 따라 잡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10나노급 4세대 D램 개발 및 설계 방식부터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이번 조직개편에서는 D램 개발실 산하에 설계그룹을 하나 추가하는 등 근원적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SAIT 산하 AI센터와 DS부문 내 혁신센터를 통합해 DS부문 산하에 AI센터를 신설하기도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대응해 고객 맞춤형 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역량을 하나로 결집한 것이다. 송용호 부사장이 센터장을 맡아 차세대 저장장치 개발과 AI 시대에 대응하는 기술 혁신을 주도한다는 방침이다.

김현일·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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