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형 방첩사령관, 13명 명단 언급…순차적 체포 계획 밝혀
국정원, 비상계엄 후 정무직 회의…법률 검토 등 대응 방안 논의
조태용 국정원장 “체포 지시한 적 없어…1차장 교체, 내가 건의”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장원 국가정보원 제1차장(왼쪽)과 윤오준 제3차장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신현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인들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는 증언이 6일 나왔다.
다만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은 비상계엄과 정치인 체포 관련해 어떤 지시도 대통령에게 받은 것이 없고, 어떤 조치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원 내부에서도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홍 차장이 윤 대통령과 통화한 보안폰 목록이 공개되고, 11명의 체포 명단을 기억해 제시하면서 새 국면에 들어섰다.
홍 1차장은 이날 오후 신성범 국회 정보위원장과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과의 면담에서 윤 대통령이 당시 전화해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라면서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국가정보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방첩사령부 지원해”라며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고도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이 충암고 후배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주요 정치인 등을 반국가 세력이란 이유로 체포하도록 지시했다는 근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 |
홍 차장은 면담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만화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홍 차장에 따르면 3일 오후 8시20분쯤 안보폰을 통해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보좌관이 소지하고 있어서 받지 못했다.
이에 홍 차장이 오후 8시22분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니 “한두시간 후에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화기를 잘 들고 대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홍 차장은 윤 대통령의 지시대로 국정원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오후 10시23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를 개최했다.
담화가 끝난 오후 10시53분, 윤 대통령은 홍 차장에게 전화해 방첩사와 협력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홍 차장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두 차례 전화했다가 통화가 안 됐고, 3일 오후 11시6분 전화가 연결됐다. 여 사령관은 처음에 통화를 기피하는 분위기였다가 홍 차장이 “대통령이 전화를 했다.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해서 전화했는데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여 사령관은 “국회는 경찰을 통해 봉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 여 사령관은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됩니다”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대표, 민주당의 김민석·박찬대·정청래 의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명수 전 대법관,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김민석 의원 친형), 권순일 전 선관위원 및 또 한 명의 선관위원 명단을 기억했다.
홍 차장은 “그다음부터 메모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노총의 위원장 1명이 더 있었다”라며 여 사령관은 순차적으로 대상을 검거할 예정이며, 방첩사에 있는 구금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 대표가 여 사령관이 체포한 정치인을 경기 과천 수감 장소에 수감하려 했던 신뢰할 만한 근거를 확인했다고 언급한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르면 체포 대상 명단은 총 13명이다.
이 과정에서 홍 차장은 조 원장과 통화를 할 수가 없었는데, 당시 조 원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해 있었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3일 오후 11시30분 정무직 회의를 소집했고, 산하 국장들도 비상소집된 상태였다. 조 원장은 “비상계엄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라고 물었고, 김남우 기조실장은 “법률검토를 해봐야 한다”, 홍 차장은 “계엄이 발령되면 모든 것이 군으로 넘어가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황원진 2차장은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지면 본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홍 차장은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안이 155분 만에 가결된 다음 날인 5일 오후 4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대통령이 즉시 경질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사직서를 제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에 홍 차장은 인사기획관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6일 오전 10시 차장 이임식을 마쳤는데, 조 원장이 홍 차장을 다시 불러서 “사직서를 반려하고 예전과 같이 근무했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홍 차장은 “용산에서는 ‘1차장 때문에 1차 비상계엄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것 때문에 대통령이 노발대발하며 경질하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본인의 사표가 반려된 것은 입막음용 아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성범 국회정보위원장과 면담 후 취재진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
조 원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과 관련해 정치인을 구류하거나 체포하란 지시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 차장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오후 “안보가 중요한 데 초당적인 노력이 필요하니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고, 조 원장은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5일 윤 대통령에게 교체를 건의, 윤 대통령이 허락을 했으나 실무적인 조치가 안 됐다고 주장했다.
홍 차장은 “예전과 같이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반려됐다는 뜻이 아니냐”고 했고, 조 원장은 “반려가 아니라 ‘팬딩’(pending·계류 또는 임박) 상태”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조 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만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조치가 있을 것 같으면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지시하지 국정원장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지시를 하겠나, 있을 수 없다”며 “얼마 전부터 제가 정무직과 관련해 여러 생각 하고 있었고 최근에 1차장이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 적절치 않은 말을 제게 한 바가 있는데, 그런 것들과 고려해 봤을 때 1차장 교체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통령에게 건의드려서 교체하는 인사 프로세스 진행 중에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육사 43기인 홍 차장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라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보위는 홍 차장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오후 긴급정보위를 개최하고 방첩사령관을 출석시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