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빵·커피·과일·고기 등 대다수 먹거리 영향권
서울의 한 대형마트 초콜릿 판매대. [연합] |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지난 몇 년간 뜀박질한 먹거리 물가가 고환율 여파로 내년에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하위권인 한국은 식품 원재료 등을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오르면 식품 물가가 오를 수 있어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에만 해도 달러당 1300원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1400원을 뚫은 이후 1400원대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져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후 지난 4일 새벽 1442.0원까지 뛴 이후 널뛰기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 거래 종가는 1419.2원으로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식품 등은 1838만톤, 348억달러(약 50조원)에 이른다. 한국은 라면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 피자에 들어가는 치즈, 커피 원두 등 각종 식품 원재료를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으로 폭넓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낮다.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2022년 기준 49.3%로 절반에 못 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있다.
곡물자급률은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식량자급률보다 훨씬 낮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한국의 최근 3개년(2021∼2023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10여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내려갔다.
밀과 옥수수는 곡물자급률이 0%대이며 콩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밀은 라면과 국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수입 콩은 장류, 식용유, 두부의 원료이며 옥수수는 액상과당의 원료로 음료에 들어간다. 옥수수는 사료 원료라 축산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 원재료는 우리 식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밀가루, 버터, 바나나, 커피, 오렌지 농축액 등은 수입에 의존한다. 치킨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튀김 기름은 대두유나 해바라기유,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 수입산이다. 맥주도 원재료인 맥아를 수입한다. 기후 변화로 과일, 수산물 수입도 대폭 늘고 있다.
유지류, 유제품 등 국제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원화 약세까지 이어지면 식품 가격 상승을 압박하게 된다. 식품 물가는 이미 몇 년 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기준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 지수는 121.3으로 기준시점인 2020년(100) 대비 21.3% 올랐다.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보다 낮은 114.4였다.
올해 롯데웰푸드, 오리온 등 식품업체들은 과자, 커피, 김 등의 가격을 올렸다. 외식업체로는 BBQ와 굽네가 치킨 가격을 올렸고 맥도날드, 롯데리아, 맘스터치는 버거 가격을 인상했다.
정국 혼란으로 정부의 물가 관리가 느슨해지면 일부 기업이 가격 인상을 서두를 수 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농심, 파리바게뜨, BBQ 등 식품·외식업체가 앞다퉈 가격을 올린 바 있다.
기업들은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최대한 많은 원재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한 종합식품기업 관계자는 “달러 강세가 계속돼 장기적으로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미 물가가 많이 오른 데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영 효율화나 원가 절감으로 버텨볼 것이라는 업체들도 다수 있다. 한 외식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불경기, 고물가 상황에서 외식 물가에 대한 정부와 언론이 관심이 크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데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