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조원 순매도, 환율 1131.5→1183원
계엄령 해제 후 3거래일 외국인 1조원 팔자
반도체 매도 집중…과거 탄핵 때 반도체는 호조
코스피 밸류에이션 8.7배, 과거 10년 평균보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증시는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 장세에 돌입했다. 대통령 거취가 불명확해지고 금융정책 동력 저하 우려가 나오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1%대 저성장 경고가 켜진데다 ‘트럼프 2기’ 수출 여건 악화가 예상되면서 국내 증시는 최악의 시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마찬가지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개인·외국인투자자 이탈이 가속화하는 단기 변동성 전망이 나온다.
코스피는 비상계엄령 선포 및 해제 이후 3거래일(12월4~6일) 연속 하락 마감하며 71.94포인트(2.88%) 줄었다. 3거래일 만에 1조원 넘는 자금이 이탈했다. 특히 외국인은 이 기간 1조102억원을 순매도했다.
계엄령 선포 직전 국내 증시는 외국인 복귀로 연말 ‘산타랠리’ 기대감을 키웠다. 외국인은 지난 3일 직전 6거래일 연속 이어진 순매도세를 마감하고 순매수(7983억원)로 전환했다. 이날 들어온 자금은 지난달 하루 최대 순매수액(3599억4800만원)보다 2.2배 넘는 규모다. 그러나 계엄령 여파로 불확실성이 드리우자 추세 전환에 실패했다. 지난 6일은 개인·외국인투자자가 7거래일 만에 동시 순매도세를 나타냈다.
탄핵 국면에 돌입하면서 강달러 현상으로 환율이 불안정해지고 투심은 악화될 것이란 게 시장 관측이다. 원화 약세는 국내 자산의 매력도를 낮추고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으로 이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가 시작된 2016년 10월 24일부터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같은해 12월 9일 사이 원·달러 환율은 1131.5원에서 1183원으로 급등했다. 이 기간 코스피는 2047에서 1963까지 떨어지며 하방 압력을 받았다. 특히 탄핵 시발점이 된 ‘태블릿 PC’ 보도(2016년10월24일) 이후 7거래일 간 코스피는 2047에서 1978으로 집중적으로 하락했다.
당시에도 외국인은 탄핵 정국에 돌입하자 매도 우위로 전환했다.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기 전인 2016년 9월(1조4963억원) 순매수였지만 10월(3193억원)과 11월(4613억원) 순매도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은 매주 박 전 대통령 탄핵 시위가 이어지며 여론이 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으로 넘어간 12월(2969억원)이 되자 순매수세로 전환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2016년10월24일~12월9일)이던 6주 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를 1349억9100만원 순매도했다. 이 기간 ▷한국전력(-3996억원) ▷현대모비스(-3221억원) ▷삼성전자 우선주(-2139억원) 순으로 매도세가 많았다. 개인투자자 이탈이 뚜렷했다. 개인은 같은 기간 2조1009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5316억원) ▷SK하이닉스(-3927억원) ▷포스코(-3139억원) ▷현대차(-2732억원) 순으로 팔아치웠다.
직전 탄핵 국면과 달라진 매수 동향은 반도체 수급이다. 최근 개인과 외국인투자자 순매도세는 반도체에 집중됐다. 개인은 최근 3거래일 간 SK하이닉스(-1636억원), 삼성전자(-1413억원) 순으로 가장 많이 순매도했고 외국인 순매도 2위 종목은 삼성전자(-2843억원)였다.
반도체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던 2016년 하반기부터 슈퍼사이클에 진입해 2018년 상반기까지 수출 호조를 보였다. 이에 힘입어 재화수출은 2016년 3분기 -0.8%였지만 4분기에 0.8%로 플러스(+) 전환했고 이듬해 1분기 4%까지 늘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158만9000원까지 잠시 하락했지만 이내 상승하며 178만원까지 올랐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주도주 반도체가 위기론으로 고전하고 있다. 국내 주요 반도체 업종을 담은 KRX 반도체지수는 지난달 지수 하락률 꼴지(-16.02%)를 기록했다. 2022년 9월 기록한 18.78%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법(칩스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해외 기업 보조금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재고조정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면서다.
내년 성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내년 경제 성장률을 1%대인 1.9%로,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평균 성장률은 1.8%에 그쳤다.
탄핵 국면에 돌입하면서 원화 가치 급락 가능성은 단기 변동 우려를 키운다. BoA의 아시아 금리 및 외환 전략 공동 책임자인 아다르쉬 신하 “탄핵 실패로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경제 펀더멘털이 약한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원화에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우려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번 탄핵소추안 표결 이후에도 국내 정치 불확실성 고조는 불가피할 것이며, 이로 인한 가계의 소비심리 약화, 기업 투자 유보 등은 국내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며 원화 약세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취약한 국내 경기 펀더멘털, 트럼프 집권 2기의 무역 갈등심화 등을 감안할 때 미 달러의 추세적 약세 전환 전까지 달러-원 환율은 1400원대에서 쉽사리 내려오기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밸류에이션은 8.7배로 지난 10년 간 평균치(10.4배)보다 낮다. 국내 증시가 그만큼 저평가 됐다는 의미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 불확실성도 존재하고 외국인 매매동향도 부정적이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저가 매수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며 “(코스피가) 2400을 하회한다면 점진적 매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음식료, 통신, 서비스 등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을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