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탄핵 없이 협의 없다”…‘한국판 셧다운’ 준예산 가능성도[이런정치]

野, 기존 ‘4.1조’→‘4.8조’ 감액 예산 추진
대통령실 사업비·경호·비서관 급여 등 삭감
박찬대 “최대한 빨리 내년도 예산안 통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개표조차 하지 못한 채 폐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4조1000억원 규모 감액 예산안에서 추가로 7000억을 줄이는 ‘4.8조 감액예산안’을 꺼내며 정부·여당 압박에 나섰다. 이에 일각에선 이달 31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협의에 실패할 경우 헌정사상 최초의 ‘준예산’이 편성될 가능성도 떠오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촉발하고 탄핵 불발로 증폭된 불확실성이 국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적 혼란과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최대한 빠르게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켜 행정부가 미리 국정 운영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은 기존 정부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 규모를 감액한 예산안에서 추가로 7000억을 더 줄인 예산안을 수정안으로 상정해 처리할 방침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정책위가 중심이 돼서 추가 감액해야 될 걸 발굴했다”며 “그게 약 700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내란 사태까지도 반영했다”며 “지금 대통령이 사실상 탄핵 상태에 있고, 저들(국민의힘)이 직무 배제니, 직무 정지니, 권한 이양이니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실 사업비 등을 추가로 삭감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진 의장은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 관련 예산 ▷대통령비서실 비서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 급여 ▷통일부 등 불필요한 예산 등의 추가 삭감을 당 방침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야당은 정부 예산안 중 예비비 2조4000억원과 대통령비서실·검찰·감사원·경찰청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삭감한 약 4조1000억원 감액 예산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의결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이달 10일까지 여야의 합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탄핵 표결 직전인 지난 7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도 “지금 예결위에서 꼭 필요한 감액만을 반영한 예산을 의결해서 언제든지 가결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올려놓았다”며 협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탄핵소추안 투표 불성립 이후 민주당의 예산 관련 기조는 강경하게 바뀌었다.

민주당 소속 국회 예결특위 위원들은 전날 성명을 내고 “대통령 탄핵 없이 예산안 협의는 없다”며 “정부와 국민의힘이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회의장이 정한 12월 10일에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감액예산으로 국민들 상대로 협박하고 있다”며 “감액예산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것을 ‘협박수단’으로 쓴다는 건,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안이 잘못이라고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일 예산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준예산 편성이 이뤄질 수 있다. 헌법 54조 3항은 ‘새로운 회계연도(새해 1월 1일)까지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의 목적(▷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을 위한 경비는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준예산 집행이 현실화하면 내년 상반기 신규 사업은 예산 지출이 불가능하다. 특히 준예산이 단 한 번도 편성된 적 없는 만큼 전례 없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방·치안 관련 예산, 공무원 인건비 등 국가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예산만 써야 하는 만큼 ‘예산 공백’ 사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란 우려다. 일각에서는 연초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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