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에 무방비…산업계, 부정 영향 차단에 전전긍긍

미·중 무역전쟁 속 정부 리더십 부재 장기화 가능성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협상 등 일파만파 가능성
“민관 원팀, 선제적 대응으로 위기 돌파해야”


울산 북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부두에 수출용 차량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 제공]


[헤럴드경제=양대근·김현일·김성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탄핵을 둘러싼 정치리스크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산업계가 이번 사태로 인한 부정 영향 확산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를 무기로 각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부 리더십 부재가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무역전쟁의 ‘골든 타임’을 실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 모습이다.

9일 재계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촉발한 관세리스크 상황에 정치리스크까지 겹치면서 내년도 경영계획을 세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12월이 되면 내년도 경영계획 보고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정치리스크 등으로) 기존 계획이 무의미해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국내 산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 중 하나가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관세 리스크다. 고율의 관세는 당장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큰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딜(deal)을 하는 과정에서 고율의 관세를 무기로 꺼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도 이와 관련,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한국경제가 관세 불확실성 등의 역풍에 더 많이 노출돼 있어 거시경제 환경은 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8일(현지시간) NBC방송 ‘미트더프레스’ 진행자 크리스틴 웰커와의 인터뷰에서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표현할 정도 관세를 최대 무기로 삼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많은 다른 나라, 특히 중국에 많은 관세를 부과해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인플레이션은 없었다”며 “우리는 관세를 강력히 믿는다.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관세는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찌감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10%의 추가 관세,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바 있다. 트럼트 당선인이 지난 대선 기간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의 ‘관세 폭탄’를 때리겠다”고 공언해 온 만큼 이번 조치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의 강경 조치 예고에 중국은 최근 갈륨·게르마늄 등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불을 놓았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역시 “미국의 수입관세 부과방침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무역 보복을 암시했고,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2기 임기 동안 또 다른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글로벌 무역전쟁 심화로 한국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등 국내 주요 산업 상당수는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이 이를 가공해 최종재로 판매하는 상호보완적인 교역 구조를 띠고 있다. 때문에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하면 국내 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26일 부산항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다. [연합]


당장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수출 업종들의 경우 미국 정부와의 보조금 협상을 비롯해 각종 통상 협상에서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이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보조금을 빌미로 추가 투자를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 역시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배터리 3사는 미국에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등 다른 업종에 비해 관세 전쟁으로 인한 여파로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삭감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 축소 등이 변수다. 업계에선 “민관이 원팀으로 대미협상에 나서야 할 시점에 정치리스크로 인해 우려가 커지고 있어 대응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전업계 역시 이번 리스크로 인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특히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서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전후로 큰 폭으로 증가한 만큼 미국의 통상 압력은 향후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대형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출제한조치)를 발동한 사례가 있다”며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 업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할 수 있는 협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환율과 저가 중국산 공세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철강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당초 한국 정부는 트럼프 2기 정부가 한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거나 쿼터를 축소하려고 할 경우, 철강 외 다른 품목과 함께 패키지 협상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측면에서 적극적인 해결이 시급하다”며 “민관 대응으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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