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사태에 정치·외교 기능 약화
국내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인들이 오는 10~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제35차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한다.
한미재계회의가 미국에서 열리는 건 지난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부의 정치외교 협상력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빠져 경제인들의 이번 ‘민간 외교’ 중요성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당초 국내 기업인들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산업·통상 정책에 대한 한국 경제계의 우려를 전할 계획이었다.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뚜렷한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배터리 산업의 보조금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그러나 한미재계회의를 일주일 앞두고 촉발된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돌발 변수가 됐다. 오히려 미국 정·재계가 우리나라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크게 우려하면서 거꾸로 우리 기업인들이 이를 달래야 하는 입장이 됐다.
이번 회의가 한국 기업의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 2기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중요 분수령으로 꼽혔지만 국내 정치 상황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회의 테이블을 지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경협은 또한 이번 회의를 통해 미국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의회 및 싱크탱크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추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미국 측에서 난색을 표해 차질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경협 관계자는 “회의 참석자 변동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 중이고 프로그램도 한창 조율 중”이라며 “최근 새롭게 발생한 국내 정치 이슈를 회의에서 다룰 지 여부는 내부적으로 좀 더 논의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외국계 기업들은 본사로부터 한국 정치·경제 상황과 사업에 미칠 영향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계 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들의 불안감이나 불확실성이 커지지 않도록 팩트에 기반해 한국 상황을 정리해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큰 동요가 있지는 않으며 정치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일 기자